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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코로나 때보다 더 어렵다” 쿠데타로 곤두박질치는 미얀마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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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금 당장은 어떤 미래도 볼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뿐”

미얀마의 의류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수 폰 치트는 20일 현지매체 미얀마 나우에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한 차례 직장을 잃었다.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발생 이후 상당수 봉제 노동자가 시민불복종운동에 동참해 업무를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공장에 남았다. 그러나 그 역시도 먹고 사는 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쿠데타 이후 주문 물량이 줄면서 공장의 가동률도 저하됐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이 줄고 초과 근무 수당이 사라지면서, 많지 않은 기본급으로만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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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지난 8일 만달레이 한 거리에 꽃을 꽂은 신발을 줄지어 세워뒀다. 만달레이|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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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의류산업은 쿠데타 이후 수렁에 빠졌다. 주요 수출시장인 유럽연합(EU)이 미얀마 관련 산업에 대한 각종 제재를 강화하면서 스웨덴의 H&M, 이탈리아의 베네통 등 주요 패션 기업들이 신규 주문을 중단했다.

이는 급격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의 노동운동가 예 나잉 윈은 미얀마 나우에 “의류 분야의 유명 기업들이 미얀마에서 철수했다”며 “쿠데타 이후 의류업계에서 약 2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 의류업계에는 70만명의 노동자가 종사했는데 전체 30% 가량의 노동자가 산업을 떠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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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미얀마 양곤 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의류봉제공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양곤|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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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등이 켜진 것은 의류산업 뿐이 아니다. 일부 업종은 코로나19때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곤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쿠데타 이후 매출이 70% 감소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에도 그의 식당은 온라인 주문으로 매출을 유지했다. 하지만 군부가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면서 온라인 주문도 뚝 끊겼다. 현재 군부는 정보 통제를 위해 야간에는 완전히 인터넷을 차단하고, 낮동안에는 모바일 기기를 통한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있다.

시민들의 시위와 군경의 유혈진압이 반복되면서 영업자체가 어려운 가게들도 늘고 있다. 양곤의 거리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한 남성은 블룸버그에 “양곤의 많은 찻집 주인들이 이 위기가 계속된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며 “매일 가게 문을 열수 없는데도 임대료와 세금, 임금은 꼬박꼬박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시위대가 군경을 피해 그의 가게로 들어올 때마다 자신도 총에 맞거나 체포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시민들을 가게 밖으로 내몰 수도 없다. 시민들을 내몬 사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 향후 영업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달 미얀마의 구매관리지수는 사상 최저치인 27.5로 떨어졌다. 이 지수가 50 이상이면 수요 확장에 대한 기대 심리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50 이하면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12월부터 최근까지 미얀마의 구매관리지수는 평균 48.9였다.

경제의 혈관 역할을 하는 은행들이 사실상 기능을 정지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은행은 공공기관, 병원, 봉제공장 등과 함께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한 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은행 직원들이 군부 쿠데타 발생 이후 업무를 거부하면서, 미얀마에 있는 은행 지점의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군부 대변인인 조 민 툰은 지난 9일 “미얀마 소재 은행 지점의 약 10%만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ATM(현금입출금기)를 통해 돈을 인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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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KBZ은행의 한 지역 점포가 지난 18일 폭발에 휩싸였다.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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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민간은행 중 가장 규모가 큰 KBZ는 21일 자사의 홈페이지에 500개의 지점 중 24개의 지점이 현재 가동중이라고 공지했다. 문을 연 지점들도 인터넷 접속 장애 등으로 입출금 등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있다. 군부의 유혈진압에 사망자가 늘고 사회불안도 커지면서 고객들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에 일부 은행들은 인출한도에 제한을 두고 있다. KBZ의 경우 개인은 한 주에 200만짯(한화 약 158만원), 기업은 2000만짯(한화 약 1580만원) 이상을 인출할 수 없도록 제한을 뒀다. 이 제한으로 인해 일부 기업들은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는 미얀마가 2010년 민주주의로 전환을 시작한 이후 쌓아올린 경제적 성과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미얀마는 민주화와 함께 시장을 개방하면서 지난 10년간 연평균 6%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세계은행은 코로나19 여진이 지속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미얀마 경제가 2%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올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예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쿠데타 이후 가중된 혼란으로 올해 미얀마의 국내총생산(GDP)이 1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은행의 아시아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 아디탸 마투는 블룸버그에 “우리는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가난한 나라에서 성장률이 10% 줄어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앙”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의 경제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미얀마의 GDP가 2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자들의 구매가 줄어들 뿐 아니라 세금이 덜 걷히면서 정부 지출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도 이 같은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군정에서 투자장관을 맡고 있는 아웅 나잉 우는 지난달 쿠데타가 외국인 투자자에 “작은 영향”만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얀마 기업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마웅 마웅 레이 미얀마 상공회의소 선임 부회장은 블룸버그에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의 모 뚜자르는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큰 오산을 저질렀다”며 “그들은 기존 정부보다 기업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고, 이 점에 있어서는 민주화를 추진하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정부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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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소수민족 카렌족 가족이 군부의 공습 이후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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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빈곤층이 최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얀마에는 하루 3.2달러(한화 약 3500원)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층이 600만명 존재한다. 군부가 정권 이양을 약속하고 총선을 실시한 2010년 42.2%에 달했던 빈곤율은 민주정부의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 2017년에는 24.8%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군부 쿠데타 이후 빈곤율이 30%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저 생계선에 놓인 사람이 180만명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쿠데타로 촉발된 이번 경제위기가 “가장 빈곤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식탁에 충분한 음식을 차릴 능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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