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배상 책임 미인정으로 외교적 부담 덜었지만 새 대응 논리 필요
위안부 문제 외교·소송으로도 해결 불투명…"장기화 가능성 커"
착잡한 심정의 이용수 할머니 |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재판부가 유사한 소송에서 정반대 판결을 하면서 이 문제로 인한 한일갈등을 풀려는 정부의 고민이 더 복잡해지는 형국이다.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개입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같은 사법부 내 판결까지 엇갈리면서 위안부 문제가 정부 간 외교적으로는 물론 소송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으면서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21일 오전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한 주권국가가 다른 나라의 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을 의미하는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보고 일본 정부 손을 들어줬다.
반인도적 범죄행위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지난 1월 8일 판결과 다른 결론이다.
이 판결에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고,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 방법도 마땅치 않아 한일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하면서 위안부 판결에 대해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위안부 피해 2차 손배소 선고 공판 마친 이용수 할머니 |
1차 판결 이후 유사 소송에서 같은 판결이 잇따르면서 한일관계가 계속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1차 판결은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이미 확정됐지만, 한일 간 파국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본 정부의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법원은 1차 판결에서 일본이 피해자들의 소송비용까지 모두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비엔나 협약 등 국제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로부터 소송비용을 추심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외교가에서는 정부가 지난 1월 1차 판결 이후 밝힌 입장이 재판부의 2차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당시 외교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한다"고 했다.
양국 간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로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게 그간 일본 정부의 주장이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판결로 인한 갈등을 어떻게든 봉합하려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문제에 대한 사법부 판단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앞으로 일관된 논리로 일본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본이 이 판결을 이용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통감과 사죄·반성 요구를 반박할 수도 있다.
이번 판결은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이미 배상 책임을 물은 1차 판결이 있고 향후 유사 소송이 어떻게 결론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일관계에 당장 영향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 정부는 판결에 개입할 수 없고 일본 정부는 소송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양국 정부 모두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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