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이슈 [연재] 연합뉴스 '천병혁의 야구세상'

[천병혁의 야구세상] 절대적인 불문율은 없다…지켜야 할 건 최소한의 예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연합뉴스

수베로 한화 감독
[연합뉴스 자료 사진]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야구 규칙서를 아무리 살펴봐도 없는 규정 때문에 그라운드가 또 시끄럽다.

해마다 한 번씩 불거지는 '불문율' 논란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이글스 감독은 지난 17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경기에서 4-14로 뒤진 8회말 2사 후 외야수 정진호를 투수로 투입했다.

패배가 확실시되자 불펜 투수를 아끼기 위해 야수를 올린 것이다.

정진호는 볼카운트 3볼-0스트라이크에 몰린 후 한가운데 공을 던졌는데 타자인 나성범이 방망이를 크게 휘두르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공은 파울이 됐지만, 더그아웃에 있던 수베로 감독이 불같이 화를 냈다.

손가락 3개를 펴고 거칠게 항의한 수베로 감독은 승부가 이미 기울어 투수 대신 야수를 올렸는데, 스리볼에서 타자가 홈런을 노리고 스윙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코어가 크게 벌어진 경기 후반 타자가 볼카운트 3-0에서 홈런 스윙을 하는 것은 KBO리그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금기시하는 타격이다.

연합뉴스

불문율 논란 일으킨 타티스 주니어의 만루홈런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8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는 10-3으로 앞선 8회 1사 만루 기회에서 텍사스 레인저스 투수 후안 니카시오를 상대로 볼카운트 3-0에서 풀스윙해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그러자 텍사스는 후속 타자인 매니 마차도에게 보복구를 던지는 등 '불문율' 논란이 일었다.

앞서 수베로 감독은 지난 10일 두산 베어스와 경기에서 1-14로 패색이 짙어지자 9회초 야수인 강경학과 정진호를 차례로 투입해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당일 한화 경기를 중계한 TV 해설자의 냉소적인 반응이 논쟁거리가 됐다.

안경현 해설위원은 "과연 입장료를 내고 이런 경기를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저 같으면 안 봐요"라고 말했다.

안 위원의 말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연합뉴스

투수로 등판한 롯데 배성근
[롯데 자이언츠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야수가 투수로 등판하는 것은 보편화된 선수 기용이다.

팬들은 승패가 기울어 지루한 경기 막판 새로운 볼거리라고 오히려 즐긴다.

KBO리그에서도 예전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허문회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17일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서 0-12로 뒤지자 7회부터 야수 3명을 차례로 마운드에 올리기도 했다.

팬들도 야수의 투수 기용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고 감독의 판단을 이해하는 듯하다.

사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경기 후반 볼카운트 3-0에서 스윙을 하거나, 야수를 투수를 기용하는 것은 야구 규칙에 따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위다.

그런데도 툭하면 논란이 이는 것은 '불문율'에 대해 저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최형우의 빠던
[연합뉴스 자료사진]



불문율은 장소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KBO리그와 메이저리그 불문율 차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행위는 '빠던(배트 던지기·bat flip)'일 것이다.

홈런을 치고 짜릿한 손맛에 방망이를 기분 좋게 던지는 행위는 KBO리그에서는 오래전부터 통용되는 동작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무서운 보복을 부르는 몸짓이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인터넷을 타고 KBO리그의 '빠던'이 미국 팬들에게 소개되고, 지난해 ESPN이 KBO리그를 중계하면서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도 배트 플립을 하는 타자가 종종 나오고 있다.

상대 팀은 여전히 기분 나빠하지만, 팬들은 호응은 아주 열광적이다.

'불문율'은 문화적 차이마저 있다 보니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

결국 '불문율'은 그라운드에서 상대를 조롱하거나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같은 야구인, 같은 리그에서 활동하는 종사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는 것이다.

shoeless@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