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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흐르는 물이 썩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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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언더그라운드.넷] “PD가 저걸 진짜로 믿은 게냐.”

4월 14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진 한 종편 프로그램 캡처 사진을 본 누리꾼 반응이다.

화면 속 등장인물은 자신이 개발한 흙에서는 물이 썩지 않는다며 그 원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흐르는 물은 H₂O(물 분자)가 쪼개진다고 생각하면 돼요.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분리되면서 물이 썩지 않게 되는 거죠. 그래서 흐르는 물은 썩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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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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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흐르면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분리된다고?

한 누리꾼은 “저 아줌마 말이 정말이면 테슬라에서 잡아갈 듯”이라고 품평했다.

주장이 사실이라면 획기적인 발명이다. 수소를 얻기 위해 애써 전기분해를 할 필요도 없다.

잠깐, 혹시 누군가 악의적으로 자막을 편집해 올린 것은 아닐까. 찾아보니 유튜브에 원래 방영 영상이 등록돼 있다.

지난해 4월 7일 등록된 채널A의 <서민갑부> 274회 방영분이다. 꽃으로 매출 11억원을 달성했다는 분 이야기다.

캡처로 장난친 것 아니다. 실제 방영한 앞뒤 장면의 내레이션을 요약 정리하면 이렇다.

이 아주머니는 다년간의 연구 끝에 흐르는 물도 썩지 않는 ‘갑부표 흙’을 만들어냈다.

원리는 이렇다. ‘자식에게도 가르쳐줄 수 없다는 비법재료’를 섞어주기만 하면 끝. 저 아주머니의 발언을 보충하는 방송 내레이션은 이렇게 돼 있다.

“이 흙 속의 천연물질이 물을 만나면 수소와 산소가 합쳐졌다가 분리되기를 반복, 화분 속의 흙이 썩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겁니다.”

방송사 측에서는 CG(컴퓨터그래픽)로 수소와 산소가 ‘분리됐다가 합쳐지는’ 장면까지 만들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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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내놓은 산소와 수소 원자가 분리되어 순환하기 때문에 물이 썩지 않는다는 주장을 방송사 측은 그래픽으로 만들어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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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1000여회에 불과하지만, “H₂O가 전기도 없이 쪼개지면 그게 물이냐? 새로운 물질을 발명했으니 노벨상감”과 같은 조롱 댓글이 등록 직후부터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건 화학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고 상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의 말이다.

“다 알다시피 물 분자를 구성하는 산소와 수소 원자의 결합은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 중에서도 굉장히 안정한 구조로 돼 있다. 여간해선 쉽게 부서지지 않는 결합이다. 간단한 과학상식으로 알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의미 없는 일이다.”

‘산소와 수소가 분리됐다 합쳐지는 특별한 물질’을 개발한 당사자 반응은 어떨까.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당사자와 통화해봤다.

“하하. 그것은 제 생각이고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조금은 어색한 웃음이다.

“증명해볼 수 있는 건 없습니다만, 죄송하지만 어쨌든 지난 20년 동안 물이 썩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는 가게 오픈 준비 중이라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니까, 1년 전 방송에서 언급한 물이 안 썩는 원리에 대한 입장은 아직도 고수 중이라는 결론이 되겠다. 건투를 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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