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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현금보다 부동산·주식 많은데…기부하고 싶어도 못하는 자산가 [기부,부의 품격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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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스러운 자녀들 한나, 주아도 이 결정에 동의했음을 알려드린다.” 올해 2월 한국인로서는 처음이자 219번째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 회원이 된 김봉진(45) 우아한형제들 의장 부부의 공동명의 서약서에는 적힌 내용이다. 더기빙플레지는 재산의 절반 이상, 최소 5억 달러 이상을 기부한 전 세계 부호들의 기부 클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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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형제들은 2월 18일 김 의장이 세계적 기부클럽인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 219번째 기부자로 등록됐다고 밝혔다. 더기빙플레지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가 2010년 함께 설립한 자선단체다. 10억달러(한화 1조원)가 넘는 자산을 보유해야 가입 대상이 되고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해야 한다. 김 의장은 더기빙플레지 219번째 기부자이자 한국인 첫 가입자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중국, 인도 등에 이어 일곱 번째다. 사진은 더기빙플레지에 올라온 김의장의 서약문.[사진 우아한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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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장의 경우 기부 규모도 컸지만, 가족들이 충분히 동의했다는 점에서 기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사회에서 기부를 결심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내가 일군 재산은 자녀한테 물려줘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김아란 아름다운재단 나눔사업국장은 “금액이 클수록 평소에 가족 간에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게 왜 딴 데로 가느냐’는 분쟁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고액 기부 증가에 대해 “자신의 성공이 운도 좋았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부처와 상속인 간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상속받은 재산이 민법에 정해진 상속 금액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기부처에 일부를 돌려달라는 유류분(상속인을 위해 남겨둬야 하는 최소한의 몫) 청구소송이다. 지난해 10월 금융회사가 운영하는유언대용 신탁에 맡긴 자산은 유류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와 화제가 될 만큼 민감한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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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 220번째 기부자인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주요 사재 기부 내역. 자료 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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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뿐만 아니라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비현금성 자산을 아우를 수 있도록 기부 단체의 전문성을 키워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고액자산가들의 경우 자산의 대부분이 현금보다 부동산이나 주식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권을 중심으로 ‘절세 목적을 겸한 의미 있는 상속’을 하기 위한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기부단체 관계자는 “자산가들은 기부단체보다는 금융권에 자문을 많이 구하는 것을 안다. 절세의 목적이 있다고 해서 기부를 비난하거나 아니꼽게 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최근 지목에 ‘밭’이 포함된 부동산 기부 상담 건을 결국 포기했다. 이 재단이 농지와 밀접하게 사업을 벌일 수 있는 농업법인이 아닌 공익법인이라서다. 주식의 경우 비영리단체에 지분을 기부해도 5%는 비과세지만 나머지는 과세 대상이다. 이런 것들이 기부 단체에서 현금 위주로 기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기부액의 20%, 일본은 50% 초과분부터 과세 대상이다. 영국과 독일은 비과세의 상한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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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국세청 공시. 안점순 할머니 1인에게 생존자 복지, 수요시위, 박물관 사업 목적의 비용을 모두 지출했다고 공개했다. 국세청 홈택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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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대학이나 병원뿐만 아니라 비영리 단체에도 고액 기부가 늘어나는 만큼 소규모 비영리단체의 회계 투명성이 더 중요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등록단체를 중심으로 회계 투명성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회계 전문 프로그램이나 인력 등을 지원하고 제재 규정을 만드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단체의 일탈이 자칫 기부 문화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기부금의 30%까지 비영리단체 인건비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인건비나 운영비 지출 범위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고액 기부가 늘수록 기부처 운영의 합리성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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