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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이슈 2020 미국 대선

바이든, 트럼프가 바꿔놓은 '보수 쏠림' 연방대법원 개혁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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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절대 우위’를 차지한 연방대법원에 칼을 빼들었다. 대법관 증원 및 종신제 폐지 등 개혁 방안을 연구할 초당적 위원회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9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대법원 개혁안 연구 위원회 설립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진보 및 보수 진영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고루 대표할 36명의 위원들은 대법원의 역할, 대법관 숫자, 현재 종신제인 대법관 근속기간 등을 재검토한 후 6개월 내에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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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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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은 현재 보수 6명, 진보 3명의 보수 ‘절대 우위’ 구조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수 진영에 남기고 간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다.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보수 성향인 앤터닌 스칼리아 대법관이 사망하자 그 자리에 진보 성향의 대법관을 앉히려 했다. 그렇게 되면 5대 4였던 보수와 진보의 구도가 뒤집힐 수 있었다. 하지만 공화당이 대선이 열리는 해에 대법관을 교체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당선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했다.

문제는 2020년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이 사망하자 돌변한 공화당의 태도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긴스버그의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임명하자, 공화당은 대선을 불과 8일 앞둔 시점에서 이를 재빨리 인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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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전 대법관(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을 8일 앞두고 그의 후임으로 지명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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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이 연방대법원을 자신들의 성향에 맞게 재편하는 것을 지켜본 민주당은 이제 연방대법원의 판 자체를 흔드는 것 밖에 남은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듯 하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인데, 보수 성향 대법관의 나이가 대체로 젊은 편이어서 현재의 ‘보수 우위’ 구도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유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은 대법관 숫자를 늘리고 종신제를 폐지해 모든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적어도 1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등의 대법원 개혁안을 요구했다. 바이든은 당시 이에 동조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번에 전격적으로 위원회 구성을 지시했다. 뉴욕타임스는 “민주당은 내년 열릴 상원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를 가정하면 남은 시간이 2년 밖에 없기 때문에 서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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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연방대법원의 보수 쏠림 현상은 우려스러운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3월 아칸소 주지사는 임신중지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임신중지 옹호 단체들이 이 법을 제소할 경우)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현재 보수화된 대법원으로 이 사건이 다시 올라갈 경우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한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보수 쏠림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이 자칫 또 다른 균형을 깰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진보 성향인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최근 하버드대 로스쿨 강연에서 “정치적 영향력이란 관점에서 대법원 시스템에 손을 댈 경우 바로 그 정치적 영향력에게 먹잇감만 던져주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오히려 (대법원의) 신뢰를 해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83세의 고령인 브라이어 대법관은 긴스버그의 공석이 보수 대법관으로 채워진 일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후임을 지명할 수 있도록 서둘러 퇴임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의회가 교착 국면에 빠진 상황에서 법원은 기후변화부터 투표권, 이민법, 선거구 개편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첨예한 정치적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떠맡고 있다”면서 “그렇다보니 법원 자체를 둘러싼 또 다른 정치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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