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절대 우위’를 차지한 연방대법원에 칼을 빼들었다. 대법관 증원 및 종신제 폐지 등 개혁 방안을 연구할 초당적 위원회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9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이 대법원 개혁안 연구 위원회 설립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진보 및 보수 진영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고루 대표할 36명의 위원들은 대법원의 역할, 대법관 숫자, 현재 종신제인 대법관 근속기간 등을 재검토한 후 6개월 내에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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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은 현재 보수 6명, 진보 3명의 보수 ‘절대 우위’ 구조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수 진영에 남기고 간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다.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보수 성향인 앤터닌 스칼리아 대법관이 사망하자 그 자리에 진보 성향의 대법관을 앉히려 했다. 그렇게 되면 5대 4였던 보수와 진보의 구도가 뒤집힐 수 있었다. 하지만 공화당이 대선이 열리는 해에 대법관을 교체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당선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했다.
문제는 2020년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이 사망하자 돌변한 공화당의 태도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긴스버그의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임명하자, 공화당은 대선을 불과 8일 앞둔 시점에서 이를 재빨리 인준했다.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전 대법관(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을 8일 앞두고 그의 후임으로 지명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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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이 연방대법원을 자신들의 성향에 맞게 재편하는 것을 지켜본 민주당은 이제 연방대법원의 판 자체를 흔드는 것 밖에 남은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듯 하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인데, 보수 성향 대법관의 나이가 대체로 젊은 편이어서 현재의 ‘보수 우위’ 구도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유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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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연방대법원의 보수 쏠림 현상은 우려스러운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3월 아칸소 주지사는 임신중지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임신중지 옹호 단체들이 이 법을 제소할 경우)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겠다”고 밝혔다. 현재 보수화된 대법원으로 이 사건이 다시 올라갈 경우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한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의회가 교착 국면에 빠진 상황에서 법원은 기후변화부터 투표권, 이민법, 선거구 개편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첨예한 정치적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떠맡고 있다”면서 “그렇다보니 법원 자체를 둘러싼 또 다른 정치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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