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6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G2 패권경쟁 길목' 미얀마…美 "쿼드 요충지" 中 "석유 생명선" [글로벌 이슈 plus]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해 중국 우한의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유일한 해외 순방지는 미얀마였다. 시 주석은 지난해 1월 17일 미얀마를 방문했다.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19년 만의 미얀마 방문이었다. 당시 시 주석은 윈 민 미얀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과도 만나 양국 간 경제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추진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2년 재선 직후 첫 해외 순방국으로 미얀마를 찾았다. 그는 당시 미얀마 재건을 위해 향후 2년간 1억70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2015년 미얀마에 민주화 정부가 들어서자 오바마 정부는 미얀마 제재를 대거 해제했다. 당시 이런 아시아 회귀 정책의 중심에는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 있었다.

지난 2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지정학적 요충지인 미얀마가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충돌 지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오랜 기간 중국 우호세력이었던 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중국이 '미얀마 전략'을 재검토하기 시작했고,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 봉쇄 전략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미얀마는 중국과 2200㎞의 국경을 맞댄 이웃이다. 1980년대부터는 서로를 핵심 우방으로 부를 만큼 가까워졌다. 1988년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를 군부가 강압적으로 제압한 이후 서방 세력의 제재가 가해지자 미얀마는 더욱 중국에 의존하는 형국이 됐다.

특히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미얀마는 중국의 에너지 안보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국가가 됐다. 일대일로는 육상과 해상을 통해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연결망을 구축하겠다는 중국의 핵심 대외정책이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서남부 윈난성 쿤밍에서 미얀마를 관통해 항구도시인 차우퓨로 이어지는 길목에 송유관과 가스관을 설치했다. 길이는 1200㎞에 달한다. 중국은 송유관을 통해 연간 2200만t의 원유를, 가스관을 통해서는 연간 120억㎥의 천연가스를 운송하고 있다. 이 수송로가 끊기면 중국은 말라카 해협을 통해 중동의 석유를 운송해야 한다. 이 경우 수송 거리가 길어져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중국에 더 위협적인 것은 미국이 언제든 말라카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입장에서 미얀마 차우퓨는 미국의 말라카 해협 봉쇄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중국이 미얀마 쿠데타 이후 군부에 송유관과 가스관의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이런 연장선이다.

미국에도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길목에 위치한 미얀마는 안보전략의 요충지다. 바이든 정부의 인도·태평양 중시 정책은 '아사아 회귀'를 천명했던 오바마 행정부 외교정책의 연장선상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얀마의 중요성은 한층 더 커진다.

미국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 인도, 호주와 함께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를 운영하고 있다. '쿼드'를 통해 인도양과 태평양 일대에서 중국을 포위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중국이 미얀마를 장악해 인도양 진출의 거점으로 활용할 경우 쿼드의 약한 고리인 인도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나가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행보는 엇갈린다.

중국은 일단 관망세다. 비간섭 원칙을 내세우며 "미얀마 내 이해관계자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게 중국 정부의 입장이다. 유엔의 미얀마에 대한 실질적 제재에 대해서도 중국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의 배후에 중국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 미얀마 내에서는 반중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중국이 쿠데타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이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정부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직접 쿠데타를 기획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중국은 민주세력과 군부 모두에 양다리를 걸치며 철저하게 자국 이익을 취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과 달리 미국은 제재를 쏟아내며 미얀마 군부를 압박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얀마 쿠데타를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라고 규정하고 "미얀마 군부는 즉각 권력을 포기하라"고 말했다. 군부 인사들과 관련된 기업들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도 단행했다.

하지만 미국 제재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미얀마에 대한 직접투자는 미국의 10배에 달한다. 미얀마 수출과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모두 30%를 넘는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중국만 흔들림 없이 지지하면 큰 경제적 타격 없이 버틸 수 있는 구조다. 미국이 제재를 하더라도 그 빈자리를 중국 정부나 기업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제사회는 미얀마 쿠데타를 둘러싼 미·중 양국의 힘겨루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미얀마 쿠데타 사태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에너지 안보'를 앞세운 중국의 실리외교와 '아시아 회귀'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이념외교가 미얀마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 = 손일선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