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호원대 K팝학과 7인으로 구성
학교 지원으로 데뷔, 학과장이 매니지먼트
"해외팬들 유튜브 댓글 확인하며 설레"
호원대 K-POP학과 재학생으로 구성된 걸그룹 아째르. 권혁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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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요? 자기소개를 뭐라고 해야하지? K-POP학과19학번인가?(웃음)"
자기 소개를 부탁하자 수줍어하다가 꺄르르 웃는 7명은 걸그룹이라기보다는 캠퍼스에서 만날 법한 대학생 같았다. 지난달 4일 '엘레강떼(Elegante)'라는 곡으로 데뷔한 7인조 걸그룹 ‘아째르(Azer)’다. 인류 최초 여성이란 뜻의 이집트어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같은 대학 같은 과 동기다. 강유경, 김민서, 남미정, 박소연, 장주연, 이재인, 최유진 등 멤버 전원이 전북 군산 호원대 K-POP학과 19학번이다.
호원대는 대학혁신 사업의 일원으로 2019년 K팝 학과를 만들었다. 기존에 있던 실용음악과 교수들과 상의해 내린 결정이었다. 결과는 성공적. 첫해 별다른 광고 없이 정원 30명을 채웠다. 이후 정원은 43명(2021년)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원자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2021학년도 경쟁률은 8.52:1이었다. 지방대 소멸론이 이들에겐 낯선 이야기다.
이들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는 건 K팝학과의 학과장 신연아 교수다. 신 교수는 여성그룹 빅마마의 멤버이기도 하다. 이들을 걸그룹으로 데뷔시킨 이유를 묻자 신 교수는 웃으며 "억울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과 학생 상당수가 기획사 오디션도 보고 연습생 활동도 했던 아이들인데, 데뷔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그런데 스무살이 넘으니 기획사는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학생들도 의기소침해 있는 경우가 많더라. 가요계 선배이자 교육자로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째르 뮤직비디오 '엘레강떼' [유튜브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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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걸그룹 결성을 목표로 했던 건 아니었다. 신 교수는 "처음에는 유명 걸그룹의 노래를 따라 하는 커버 그룹 정도로 생각했는데 진행하다 보니 의욕이 생겨 일이 커졌다"고 말했다. 남미정은 "처음에는 12월에 발표할 학기말 과제 정도로 생각했다"며 "걸그룹으로 데뷔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막상 걸그룹을 만든다고 해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자본 규모를 가진 기획사들과 똑같이 경쟁하긴 어렵다. 이들은 최대한 쥐어짜 수십분의 일의 가격으로 만들어냈다.
곡은 신 교수의 지인에게 '저렴한' 가격에 받고, 안무는 K팝학과 학생들이 모두 참여해 만들었다. 트레이닝은 학과 교수들이 맡았다. 멤버들은 19학번 학생을 대상으로 선발 과정을 거쳤다. 신 교수는 "다들 뛰어났는데, 그룹을 결성하려면 '합'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선발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걸그룹으로 데뷔했지만 일상 생활은 여느 대학생과 다르지 않다. 혹독한 단체 생활이나 엄격한 사생활 금지는 없다. 모두 학교 기숙사나 인근에서 자취를 하고 휴대전화도 자유롭게 이용한다. 데뷔 후에도 이재인은 카페에서, 장주연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학교 수업이나 아르바이트 등이 없을 때는 함께 모여서 연습도 하고, 유튜브에 내보낼 영상을 어떻게 만들지 논의한다고 한다. 김민서는 "코로나19로 오프라인 무대가 별로 없으니 우리처럼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닌 걸그룹에게는 오히려 기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음악프로그램에 한 번도 서지 못한 이들이지만 데뷔곡 '엘레강떼'는 39만7000회(6일 오전 10시 현재)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은 2700여개. 대부분 외국인들이 올렸다. 이재인은 "국적도 다양하다. 브라질팬은 거기로 와서 공연해주면 안 되냐고도 한다(웃음)"며 "함께 각종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댓글 반응을 보는 게 즐거움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호원대'를 기획사 이름으로 아는 분들도 있다"(강유경)고 한다.
호원대 K-POP학과 재학생으로 구성된 걸그룹 아째르. 최유진 장주연 이재인 남미정 강유경 박소연 김민서(왼쪽부터) 권혁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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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대학 생활을 하는 줄 알았는데, 걸그룹으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대부분이 깜짝 놀라며 가장 든든한 팬이 됐다. 기획사 연습생이었다가 중도에 나온 경험이 있는 박소연은 한때 아버지가 "걸그룹을 할 거면 집을 나가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딸의 동영상을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열렬한 팬이다. 장주연도 "유튜브에 나온 댓글까지 확인해서 알려줄 정도"라고 말했다.
학교 과제 정도로 생각했다가 덜컥 걸그룹으로 데뷔한 멤버들은 조금씩 욕심이 나는 모양이다. 두번째 음반도 내고, 음악프로그램에도 서보고 싶다던 이들은 "아, 그리고 이 말씀 꼭 드리고 싶다"며 강조했다. "국군장병 여러분, 저희 불러주시면 대한민국 방방곡곡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브레이브걸스보다 더 열심히 할게요."(최유진)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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