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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쿠데타는 미얀마의 군부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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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얀마 국민은 3월 27일을 ‘저항의 날’이라고 부른다. 미얀마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미얀마를 점령한 일본군에 맞서 무장 저항에 나섰다. 그때 국민적 영웅으로 등장해 일본군에 저항했던 인물이 아웅산 수치 여사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다. 1962년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군부는 이날을 ‘미얀마군의 날’이라 했다. 하지만 2021년 미얀마는 또다시 닥친 군부 쿠데타로 국군의 날 대신 시민의 피로 얼룩진 ‘저항의 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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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회의에서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오른쪽)이 미얀마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위원과 나란히 앉아 있다. 미얀마 군부는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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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이 ‘저항의 날’로
국군의 날 하루 동안 어린이를 비롯해 미얀마 전역 40개 도시에 걸쳐 군경에 의해 숨진 사람은 114명에 달한다. 군부 쿠데타 이후 가장 많은 일일 사망자를 기록했다. 군부는 이날 새벽부터 실탄과 고무탄 등을 발사하며 시위대 진압에 나섰다. 시위현장은 피와 비명으로 아수라장이었다. 현장에서 취재한 Y기자는 “양곤 시내 모처에서 열리는 시위에 나갔다. 하지만 미처 시위대 대열이 생기기도 전에 군인들이 총을 쏘아 구호 한번 제대로 외쳐보지도 못하고 비명과 아수라장이 됐다. 맨 앞에 있던 청년이 쓰러지는 걸 보고 도망쳤다”고 말했다.

희생자 중에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도 많다. 미얀마의 최대 도시 양곤 메이크틸라에선 군인들이 시위대를 찾겠다며 주택가에서 실탄을 쏴 인근 자택에 있던 13세 소녀 등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갑자기 군인들이 쏜 실탄에 사망한 시민도 있다. 그날 사망한 이들의 장례식을 취재했던 M기자는 “너무 슬펐다. 어떤 사람은 관도 없이 묻혔다. 갑자기 하루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관을 구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15세 이하 아이들의 희생이 많았다. 총 14명의 아이가 군인들의 실탄에 사망했다고 미얀마 현지 언론 미얀마 나우가 보도했다. 쿠데타가 이후 군인들에 의해 사망한 어린이들의 누적 숫자는 30여명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군인들이 아이들을 표적으로 삼는 이유는 가장 약한 아이들을 희생시킴으로써 그 부모들과 이웃들을 공포와 슬픔에 몰아넣어 시위에 동참하지 못하게 하려는 고도의 심리 전술이다.

통상 이것은 전쟁 중 적군의 마을을 공격하며 최소 공격으로 최대 효과를 보는 심리전이다. 미얀마 군부는 국가에 세금을 내는 비무장 국민을 대상으로 군대를 동원한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그렇게 공포를 조성해 시위를 잦아들면 군부가 안정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국제사회에 미얀마의 정권 주체로 인정받으려는 계산일 것이다. 미얀마 시민의 피를 보는 한이 있어도 군인들에겐 당장 그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미얀마 시민에게는 피의 하루였지만 군부는 국군의 날을 기념해 수도 네피도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했다. 미얀마 군부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흘라잉 사령관은 TV 연설에서 “안정을 해치는 폭력적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국민을 향해 경고했다. 친군부 매체 국영 MRTV에는 “머리와 등에 총을 맞을 수도 있다”는 시위대를 향한 협박성 보도까지 나갔다. 그야말로 지금 미얀마는 군인들 세상이다.

이날 국군의 날 행사에는 국외 귀빈도 많이 참석했다. 러시아에서는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부 차관이 참여해 미얀마 군부의 전·현직 핵심인사들과 회동했다고 알려졌다. 군부의 한 소식통은 “러시아 포민 차관은 흘라잉 사령관이 직접 접견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여러 외교 통로를 통해 “이번 미얀마 군부 행사에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8개국 대표자가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군부의 배경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중국은 본토에서 고위직 관계자를 보내지는 않았다. 아마도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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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시민들이 군사 쿠데타에 항의하며 민 아웅 흘라잉 군사령관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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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표적으로 삼는 이유는
그날 흘라잉 사령관이 나비넥타이에 흰색 메달로 장식된 재킷을 입고 화려한 레드카펫을 걸으며 군 인사들과 호화로운 저녁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SNS 영상에 올라왔다. 아마도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영국 단체 버마 캠페인의 마크 파마 너 대표는 “이번 쿠데타는 군부 쿠데타라기보다 민 아웅 흘라잉의 쿠데타”라는 평을 했다.

흘라잉 사령관은 1956년생 64세로 현재 미얀마군 통수권자인 최고사령관이다. 역시 군 출신 대통령인 탄 쉐의 2011년 퇴임 후부터 사실상 미얀마 실권자이다. 그는 미얀마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군인이다. 양곤인문사회대학교 법학부에서 법학사 학위 취득 후 우리로 말하면 육군사관학교에 해당되는 국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미얀마는 대통령과 총리 등에게 군 통수권이 없다. 대신 최고사령관이 군대 내 합의로 알아서 추대되며 군대 일은 외부 간섭없이 군대 내에서 알아서 관리한다.

거기에 군부는 미얀마 경제에도 힘을 발휘한다. 그들은 대부분 미얀마 기업을 소유하고 직접 운영하므로 자금력도 막강하다. 흘라잉 사령관은 미얀마군 소유의 미얀마군인복지법인의 최대 주주이며, 미얀마의 대표적인 대기업 미얀마 경제 공사와 미얀마 경제 홀딩스에 대한 지분도 상당하다. 이처럼 자금력과 정치력을 모두 쥔 흘라잉은 이번 쿠데타를 일으킬 배경을 두루 갖춘 셈이다.

군 내부를 잘 아는 한 미얀마 인사는 “미얀마 군인들의 내부 결속은 대단하다. 마치 한 특별한 종족이 모여 있는 듯하다. 군 수뇌부에 대한 충성도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끼리 돈과 권력을 나눠 먹는 구조에 익숙하기에 쿠데타는 또 하나의 비즈니스다. 쉽게 권좌를 내려놓을 집단이 아니다. 흘라잉은 그 힘의 정점에 있다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흘라잉은 2017년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탄압 당시 직접 명령권자로 로힝야족 대량학살의 주역이기도 하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국민의 시위에도 끄떡없이 하루에도 100여명을 사살하는 군부의 모습에서 로힝야 대량학살의 그림자가 보인다. 총사령관 지위만으로도 부와 권력을 쥐고 흔들 수도 있는데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NLD당이 장악했던 정권을 찬탈함으로써 그의 힘과 특권이 더욱 확대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지금 국민의 저항에 밀린다면 기존에 쌓아왔던 부를 잃게 되고 현재까지 벌어진 국민의 희생으로 전쟁범죄에 달하는 책임을 묻게 될 수 있어 그의 선택은 당연히 직진뿐으로 보인다. 3월 27일의 국군의 날 화려한 행사와 사상 최대 인명 피해가 벌어진 배경은 그의 선택지가 단 하나뿐이라는 심증을 보여준다.

“흘라잉 최고사령관의 쿠데타”
국군의 날 행사 때 벌어진 미얀마 시민의 비극을 두고 미얀마 임시정부 역할을 하고 있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는 당일 바로 “오늘은 군부 수치의 날”이라며 “군 장성들은 무고한 국민을 300명 넘게 살해해놓고 기념식을 열었다”고 비난했다. 국제사회도 미얀마 군부를 비난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 영국 등 12개국 합참의장들은 이날 같은 군인인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미얀마 군경이 비무장 민간인에 살상 무력을 가한 것을 비판한다”고 분노했다. 그러나 흘라잉 사령관과 그를 따르는 군부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시민의 시위에 더욱 가혹한 진압과 체포를 이어가고 있다.

김니나노(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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