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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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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국민의힘 유세장서 사라졌다...'극우'와 갈라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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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나타나면 선거 망쳐"
한국일보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달 31일 동작구 총신대입구역 앞에서 지원 유세를 했던 청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지난해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의 유세 차량 옆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뉴스1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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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는데 제대로 못하잖아요. 오세훈 후보는 어떤 사람인가 보러 왔어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1일 서울 성북구 길음동 유세장에서 만난 이모(39)씨의 말이다. 요즘 오 후보의 유세장엔 2030세대 유권자가 꽤 모여든다.

"나는 혼자 다녀. 절대로 태극기 부대가 아니야!" 같은 유세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서 있던 김모(70)씨가 손사래를 쳤다. 국민의힘 지지자인 그는 자신이 흔드는 태극기가 오 후보에게 '흠'이 될까 걱정하는 듯 보였다.

국민의힘 유세 현장에서 태극기가 자취를 감추었다. 태극기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무리 지어 다니는 태극기 부대도 없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 유세장마다 태극기가 휘날렸던 것과는 딴판이다. 황교안 당시 당대표가 극우와 연대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태극기와 힘을 합치라"는 옥중 서신을 보내면서, 태극기 부대는 국민의힘의 주력 부대였다.

1년 만에 보수의 중심에서 태극기가 사라진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 '필사적 거리 두기'


무엇보다 국민의힘이 '태극기 세력'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합리적 보수 정당'으로 좌클릭 중이기 때문이다.

과거 보수 정당은 위기에 몰릴 때마다 극우 인사를 연설자로 세우고 강성 보수층을 유세장으로 끌어모아 세를 과시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강경파를 최대한 배제하는 중이다. 1일 이준석 국민의힘 선거대책위 뉴미디어본부장의 설명. "강성 보수층에 기대 선거운동을 하면 중도층이 실망해 가까이 오지 않는다. 중도층이 다가올 수 있게 하는 전략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태극기 집회 사령탑 역할을 해 온 우리공화당 관계자도 "이번엔 국민의힘에서 도와달라는 요청이 없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극우 보수가 선거 한복판에 나타나지 않도록 메시지 관리를 한다. 보수 유튜버들이 퍼뜨리는 21대 총선 사전투표 부정선거 의혹, 문재인 대통령 코로나19 백신 주사 바꿔치기 의혹 등이 '가짜 뉴스'라고 국민의힘이 나서서 알린다. 이준석 본부장은 "강성 보수층을 선동할 '미끼'를 풀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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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대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뒤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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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빠진 태극기? 전략적 선택?


정부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집회·모임을 강력히 제한하면서 태극기 세력은 자연스럽게 축소됐다. ''태극기 부대' 출신들에게 근황을 물어 봤다. 유모(53)씨는 "지난해 여름 광화문집회에 나갔다가 벌금을 받은 분들이 많아서 다들 나오는 걸 꺼린다. 요즘은 모여서 밥 먹을 곳도 없어 무리 지어 다닐 수가 없다"고 했다. 김순영(72)씨는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돼 집회나 유세장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학력 태극기 부대원들이 국민의힘을 돕기 위해 전략적으로 활동을 자제한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태극기 세력을 이끌었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얘기. "이번 선거는 중도층을 모아야 이기는데 태극기를 들고 가면 분위기를 망친다. 어르신들이 유세장에 가도 태극기는 흔들지 않고 최대한 책 잡힐 행동은 하지 말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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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1일 서울 노원구 경춘선숲길에서 시민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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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결별 힘들었는데… 고무된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달라진 선거 현장 모습을 반기고 있다. 김웅 의원은 "이제 국민의힘에서 태극기 세력의 아이콘이 될 정치인은 찾기 어렵다"면서 "극우가 힘을 잃는 분위기가 퍼지자, 시민들이 보수 정당 얘기에 귀를 기울여준다"고 말했다. 김병민 국민의힘 비대위원도 "'김종인 비대위' 출범 이후 강경 투쟁 대신 시민들과 함께한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낸 효과"라고 자평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박재연 기자 repla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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