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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정의용 "미·중, 선택요구 안해···日, 위안부 합의 정신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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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장관 첫 내신 기자간담회

미중 패권경쟁 속 "선택 요구 없었다"

위안부 문제 "일본 진정성 있는 사과해야"

눈 감은 北 인권 "인도적 협력 선행돼야"

중앙일보

정의용 장관은 31일 취임 후 처음으로 내신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미중 패권경쟁, 한일 관계, 북한 인권 등과 관련한 질문에 답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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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31일 미·중 간 패권 경쟁으로 한국이 외교적 선택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미국과 중국은 우리에게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며 “미국과 중국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날 열린 취임 후 첫 내신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중 관계도 조화롭게 발전시켜나가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한국이 미·중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고 포지셔닝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정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한·미·일 간 중국 견제 논의가 이뤄지는 시점에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미국에 잘못된 신호를 발신하는 것이란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정 장관은 다음달 3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날(현지시간 2일) 한·미·일 안보실장은 미국 워싱턴에서 안보 협의를 갖는다. 미국이 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에 힘을 모으는 상황에서 정 장관은 미국을 건너뛴 채 중국을 먼저 방문해 외교장관 회담을 갖는다는 얘기다. ‘한·미 동맹이 한국 외교의 근간’이라는 입장과 달리 정작 정 장관의 행보는 대중(對中) 외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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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장관은 31일 내신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 중국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미중 간 협력을 강화하는데서 한국의 역할을 찾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시진핑(오른쪽)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왼쪽) 미국 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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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관은 미·중 간 경쟁보단 협력에 방점을 찍고 한국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미·중 협력이 필요한 대표적 분야로 코로나19 대응 등의 보건 안보와 기후변화, 한반도 문제 등을 꼽으며 “이런 분야에서 미·중 간 협력을 촉진하고 양국 관계가 건설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미·중이 신장 위구르 소수민족 차별 등의 인권 문제를 놓고 동맹과 우방국을 규합하며 갈등을 벌이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를 협력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한 인식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



"위안부 합의 지키면 문제 99% 해결"



정 장관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한·일 관계에 대해 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려있지만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일본의 사죄가 먼저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특히 과거사 갈등의 핵심축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정신에 따라 일본이 반성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면 문제의 99%는 해결된다. (일본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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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장관은 한일 관계와 관련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자고 요청하면서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진정성 있는 태도와 사과를 요구하며 공을 일본 측에 돌렸다. 사진은 지난 3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를 방문한 이용수 할머니를 맞이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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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태도를 요구하는 발언이었지만 ‘위안부 합의 정신’을 언급한 것은 논란이 예상된다. ‘피해자 중심주의 결여’를 이유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등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효화한 것은 문재인 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래놓고선 도리어 일본 측에 합의를 지키라는 취지로 촉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본 측에서는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이미 '일본 총리대신'이 사죄 표명을 했는데, 추가적으로 무슨 사죄를 더 하라는 것이냐고 반발할 소지도 있다.

정 장관은 그러면서도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조기에 개최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어떠한 형태로도 만날 용의가 있다”며 화해의 손짓을 했다. 과거사 문제와 현안을 분리해서 대응하는 ‘투 트랙’ 기조에 따라 대화를 통해 한·일 양국 간 협의가 가능한 부분부터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정 장관이 취임한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일본 측 카운터파트인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의 전화통화가 성사되지 않는 등 일본은 대화의 여지조차 주지 않고 있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국이 의미 있는 제안을 하지 않는 한 협의는 무의미하며, 궁극적인 관계 개선도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도미타 고지(冨田浩司) 주미 일본 대사는 지난 30일 미국 의회 전문매체 더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한·일)에겐 몇 가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며 과거사 문제를 언급했다. 도미타 대사는 또 “이는 최근 한국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소송과 판결에서 비롯된다”며 “우리의 전반적인 관계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北 인권 묻자 "인도적 지원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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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장관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 "종합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5일 국민의힘 소속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들이 북한인권재단 이사 임명 등 북한인권법 시행을 촉구하기 위해 통일부를 항의 방문한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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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장관은 인권을 외교 정책의 중심축에 놓고 있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북한 인권 상황을 외면하고 있는 한국 간 온도차가 감지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북한 주민의 실질적인 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선 인도적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북한 인권 문제를 비판하고 각을 세우는 것보단 남북 협력을 통한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정 장관은 또 “북한 인권 문제는 종합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며 "미송환 국군 포로 문제와 같은 것은 우리도 계속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는 말도 남겼다.



다만 정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사안별로, 또는 관련 여건에 따라 판단 기준을 달리 하는 ‘선택적 인권’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로 들릴 소지가 있다. 실제 한국은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상황과 관련해선 “미얀마 국민들에 대한 폭력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고 비판했지만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권 침해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채택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은 2019년 ‘한반도 정세’ 등을 이유로 결의안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뒤 3년 연속 불참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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