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로 중계되는 미얀마의 폭력…힘 못 쓰는 UN, 머뭇거리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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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상황 속보를 쓰는 일은 가슴이 웅장해지면서도 참 많이 아픈 일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까 싶은 일들이 2021년 현재 우리 눈앞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무기도 없는 미얀마 사람들이 무차별 폭력에 맞서 할 수 있는 건 자기 가족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바리게이드를 설치하고, 희생당한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히 영상과 사진으로 남겨 지구촌 곳곳에 전하는 일입니다. 그 참상과 잔혹한 모습들은 편집되지 않은 채로 한국인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장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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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눈에 고무탄을 맞아 안구가 파열된 한 살배기 아이, 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있다가 총을 맞아 숨진 소녀, 어린 아들을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의 모습.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WhatIsHappeningInMyanmar' 태그로 검색되는 현실은 잔혹합니다.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사진과 영상이 가득했던 팬 계정들은 이제 자국의 상황을 전하는 고발 계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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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광주가 박제돼 있는 듯한 미얀마는 '폭력'의 현실을 너무나 생생히 보여줍니다. '연결사회'는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간 군부의 폭력은 남겨진 피해자들의 흔적에서만 유추할 수 있거나, 입증 증거가 충분치 않아 우리 역사에서도 늘 진위 공방이 오가곤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미얀마 군부의 폭력은 상당히 많은 경우 어딘가에서 카메라를 켜든 이들에 의해 생생히 기록되고 있습니다. 화면에 등장한 미얀마 군인이 치켜 든 총기의 종류를 전 세계 네티즌들이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물론 요즘도 새벽 시간 인터넷을 종종 차단하고 있는 군부가 이런 상황을 오히려 독려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폭력 현장 중계를 통해 시위대의 공포감을 자극하려는 의도라는 건데요. 실제로 이미 사망한 시위 참여자의 시신에 실탄을 난사하는 장면을 아주 가까이에서 찍어 영상을 유통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군부는 폭력을 사용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경 진압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이 참상들이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건 사실입니다. 군부가 장악한 국영 MRTV를 통해 내세우는 '폭력 시위'라는 일방적 선전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각하다'며 말로만 규탄 성명을 내고 있는 UN과 미국 등 강대국들이 이제 희생을 막기 위한 실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도 모두가 실상을 함께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명의 진보라는 게 이런 것일까요. 이제 존재하는 폭력을 은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미얀마군의 날, 대규모 열병식 거행한 군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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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패권국들 사이 복잡한 셈법을 필요로 하는 냉전 세기의 유산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루 최소 114명 사망이라는 최악의 참사를 기록한 '미얀마 군의 날' 첫날인 27일,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베트남, 라오스, 타이 고위급 인사들이 미얀마를 방문해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특히 러시아에선 최고위급으로 분류되는 국방차관이 방문했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자랑스럽게 이 소식을 국영 방송으로 내보냈습니다. '군사관계를 강화한다'는 메시지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전달받은 미얀마 시민의 분노와 낙담을 가늠할 길이 없습니다.
군부와 오랜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도 미얀마 시민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인도양 진출 주요 관문인 미얀마는 특히 군부가 장악한 여러 사업들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동안 중국과 함께 자원 개발 등 대규모 사업을 꾸려왔습니다. 민 아웅 흘라잉의 쿠데타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의심이 커지면서 미얀마 현지인들은 간헐적으로 인터넷이 중단될 때마다 중국으로부터 군인과 무기 등을 지원받는 비행편이 암암리에 미얀마를 오가고 있다는 소문을 저희 취재진에게도 전해주었습니다.
미얀마 군부와 확실한 친선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 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한 유엔의 실질적 제재가 어렵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도 연일 규탄 성명을 내곤 있지만 군부 휘하의 자산을 동결하고, 가족들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것 외에 미얀마의 희생을 당장 멈출 만한 방안엔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피상적인 대응에 미얀마는 점점 내전의 수렁으로 빠지는 모양새입니다.
미얀마 시민 사이에선 이런 말이 떠돈다고 합니다. '이번 시위로 쿠데타 세력을 몰아내면 우리는 한국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북한이 되어 살아야 한다.' 반세기 전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우리의 희생은 압제의 고통에 신음하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현지인들을 위한 국내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사제단은 "모금액은 현지 국민들을 돕고 또 반쿠데타 시위에서 희생된 이들의 자녀를 위한 재원으로 쓰일 예정"이라고 전해왔습니다. (후원문의 : 02-3672-0252)
(사진=트위터, 연합뉴스)
정혜경 기자(choic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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