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진주 방화살인범 안인득이 18살 고등학생 최모양 집 앞을 서성이고 있다. KBS뉴스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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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고등학생을 포함한 여성 5명이 살해당했다. 범인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남성. '진주 방화살인범'으로 알려진 안인득이다. 안인득은 윗집에 사는 18살 최모양을 반년 넘게 스토킹했고, 최양에게 접근이 여의치 않자 주민들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당시 최양의 가족은 집 앞에 CCTV를 설치하는 등 증거를 모아 경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경찰은 "직접 폭행하지 않았고 구체적 피해사례가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고 한 달 뒤 안인득은 최양을 포함한 여성 5명을 살해했다.
지난해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2013년 312건에서 2015년 363건, 2018년 544건, 2019년 583건으로 계속 증가했다. 하지만 스토킹은 신고율과 검거율이 높지 않다. 이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범죄는 더 잦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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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처벌법' 22년 만에 국회서 통과
이제 스토킹이라는 범죄가 명확히 규정되고 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되면서다. 지난 1999년 15대 국회에서 처음 논의된 이후 22년 만이다. 그동안 스토킹을 해도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 행위로 분류해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쳤다. 이는 노상 방뇨에 대한 처벌과 같은 수준이었다.
스토킹 처벌법에서 '스토킹'은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에 대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는 행위 등을 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로 규정한다. 앞으로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흉기 같은 위험한 물건 이용 시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경찰은 스토킹 신고를 받은 즉시 현장에 나가 제지하거나 접근금지와 같은 긴급조치를 해야 한다. 스토킹 범죄 전담 검사와 경찰관을 지정하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됐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가장 기대하는 점은 경찰이 더는 피해자의 신고를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일단 한 번 신고가 들어가면 경찰이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의도로 문 앞에 서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심각한 사태까지 이르지 않게 경찰이 움직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기사와 관련없는 일러스트.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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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토킹 처벌법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여전하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지난 24일 논평을 내고 "법률안에 따르면 스토킹 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행해질 때만 범죄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단 한 번의 행위만으로도 피해자는 공포나 불안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포와 불안을 느껴야만 피해로 인정하는 것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라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의 입을 막는 반의사불벌 조항의 존속,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신청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 명령의 부재, 피해자의 일상회복을 위한 지원제도 미비 등 현재 법률안으로는 피해자 보호와 인권 보장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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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법안 수정하며 점차 발전시켜야"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위원은 "반의사불벌죄의 경우 경미한 범죄에 적용되는 건데, 이는 국가가 아직 스토킹을 바라보는 범죄의 경중이 낮다는 걸 보여준다"며 "회복적 사법이라는 면에서 반의사불벌죄의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날 수 있는 고리를 차단하고,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이 가해자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치료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승 위원은 또 "법률 이름이 스토킹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수정되어야 한다"며 "스토킹을 처벌함과 동시에 피해자를 보호하는 게 이 입법의 핵심"이라고 제언했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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