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멋대로 화장, 시신 없는 장례식 잇따라
총상 입고 끌려간 이들 행방 묘연
시민들 "강력한 폭풍은 침묵 뒤에 온다"
23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군경의 총격으로 아빠 품에서 숨진 7세 소녀. 만달레이=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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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가 망자의 안식마저 해치고 있다. 총격에 쓰러진 시민의 주검들을 빼앗아가거나 사인 규명을 빙자해 무덤을 파헤치는 만행이 잇따르고 있다. 총상을 입고 목숨이 위태로운 시민들은 어디론가 끌려간 뒤 행방이 묘연하다.
25일 미얀마나우, 이라와디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23일 총격으로 아빠 품에서 죽어간 7세 소녀의 시신을 군경이 탈취하려고 했다. 소녀의 언니는 "동생 시신을 빼앗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밖에 숨어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동생이 숨진 날 밤 11시쯤 군인들이 문을 부수고 집안을 마구 뒤졌다"고 말했다. 소녀는 다음 날 새벽 간략한 장례를 마친 뒤 조용히 공동 묘지에 묻혔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3일 군경의 총탄에 숨진 19세 태권소녀 차이신. 만달레이=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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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는 7세 소녀의 죽음이 시민 분노를 촉발하자 사인을 조작하거나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군부는 3일 군경의 총격으로 숨진 19세 태권 소녀 차이신의 무덤을 5일 사인 규명 명목으로 파헤치고 시신을 훼손한 바 있다. 윗옷에 적힌 'Everything will be OK(다 잘 될거야)' 글귀, 시위 현장에서 보여준 용기, 시신 기증 등 평소 고인의 언행은 이후 시민 저항의 동력이 됐다.
시신 없는 장례식도 줄을 잇고 있다. 제2도시 만달레이의 시민단체는 "5일 이후 4건의 장례식이 주검도 없이 치러졌다"며 "군부가 총격 희생자 시신을 가져가 (가족 동의도 없이) 화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라진 시신은 더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1일엔 장례식 도중 부검을 빌미로 16세 소년의 시신을 가져가는 일도 발생했다.
미얀마 양곤에서 총격 희생자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양곤=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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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상을 입고 끌려간 사람들은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다. 만달레이의 한 시민은 "19세 동생이 피투성이가 됐는데도 군인들이 끌고 갔다"며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다"고 미얀마나우에 전했다. 군인들이 숨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질질 끌고 어디론가 가는 장면들이 담긴 동영상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고 있다.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AAPP)가 집계한 사망자 수는 24일 기준 286명이지만 실제 희생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부는 만행을 가리기 위해 그간 체포한 시민 628명을 석방했다고 전날 홍보했다. AAPP가 집계한 군경의 검거 인원이 2,000명 이상이고 실종된 이들도 많은 걸 감안하면 3분의 1도 안 되는 숫자다.
24일 '침묵 파업'이 진행된 미얀마 만달레이 도심. 만달레이=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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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7세 소녀가 숨진 다음 날인 24일 "강력한 폭풍은 침묵 뒤에 온다"며 '침묵 파업'을 진행했다. "일도, 외출도 하지 않고, 모든 상점은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도심이 텅 비었다. 밤에는 촛불 집회를 열었다. 25일엔 다시 거리로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재무부가 미얀마 군부 소유 미얀마경제공사(MEC)와 미얀마경제지주사(MEHL)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제재방안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미얀마 군부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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