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상대 위안부 피해소송 내달 21일 추가 선고
결과 따라 또다른 외교적 파장…'국가면제'가 쟁점
위안부 피해 할머니 소송대리인 김강원 변호사가 지난 1월 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추가 결론이 내달 21일 나온다. 지난 1월 이용수 할머니 등 다른 할머니들의 1심 소송에서 일본 정부에 패소 판결을 내린 뒤여서 또 다른 외교적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부장 민성철)는 24일 곽예남 할머니 등 20명이 일본 정부에 1억원씩을 청구한 손배소의 변론 기일을 종결했다.
이날 최대 쟁점은 역시 ‘일본 정부에 국가면제(state immunity)를 적용할 수 있는가’ 여부였다. 국가면제는 어떤 나라든지 다른 나라의 사법권에 지배받지 않는다는 국제법 원칙이다.
변호인단은 “국제 관습법상 ‘재판 받을 권리’와 '국가면제'가 충돌할 때는 양쪽을 비교 형량해 개별적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며 “국제 인권조약 등의 정신을 고려할 때 이번 사건에서는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관련 소송에서 한국 측 재판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피고 측 대리인이 없는 궐석 재판 형식으로 진행됐다.
대신 재판부가 법적 쟁점을 최종 점검하며 변호인과 공방을 벌이듯 치열하게 문답을 주고받았다.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인정한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일명 '페리니 소송')와 이번 사례가 어떻게 다른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이번 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을 변호인단에 물었다.
페리니 소송은 ICJ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강제징용을 당한 이탈리아 시민 페리니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독일 정부의 손을 들어준 사건이다. ICJ 는 “무력분쟁 당시 발생한 불법행위는 국가면제에 따라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독일의 국가면제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건 이를 근거로 한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위안부 피해가 일어날 당시 한반도는 무력분쟁의 당사자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2차 대전의 당사국이었던 독일·이탈리아와 달리 한국은 2차 세계대전에 당사국으로 참여한 게 아니었고, 가해자인 일본과 분쟁 중인 상황도 아니었다는 논리다. 이 때문에 ICJ 판례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적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대안적 권리 구제 수단이 될 수는 없는지”, “이 합의가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의 행사라는 주장에 대한 의견은 어떤지”도 물었다.
변호인단은 이에 위안부 합의에 관한 2019년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들었다. 헌재는 “위안부 합의의 위헌성을 따질 소송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각하하면서도, 해당 합의의 법적 성격에 대해 이례적으로 상세히 밝힌 바 있다. “2015년 합의는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고,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도 소멸되지 않았다”라고 하면서다.
변호인단은 “이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에서 출연금을 받아갔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는 점을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미국·영국 등은 테러 등의 사안에서 법을 개정해 재판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왔다”며 2017년 사망한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 사건을 거론했다. “웜비어 사건 당시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가 웜비어 고문 사건으로 재지정됐다”며 “이에 따라 미국 법원은 웜비어가 미국인이라는 사정만으로 북한에 대한 재판 관할권을 인정했다”고도 했다.
유엔 증언대에 선 오토 웜비어의 부모. [AP=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웜비어는 북한에 구금됐다가 2017년 식물인간 상태로 귀환해 사망했다. 미 연방 법원은 2018년 웜비어 측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북한 정권이 5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선고는 당초 1월 13일로 잡혀있었다가 연기됐다. 선고 닷새 전 다른 재판부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여론에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번 소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이상희(49·사법연수원 28기)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가 이끌고 있다. 변호인단이 소송의 근거로 든 2019년 헌재의 위안부 합의 판단 심리에 참여한 이미선(51·26기) 헌법재판관이 이 변호사의 친언니인 점도 눈길을 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