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단일화 실패 이후 JP와 연합해 정권교체
노무현, 역사적 러브샷…단일화 파기 딛고 승리
제3지대 상징 안철수, 또 한 번의 시험대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한국 현대사에서 단일화 여부는 선거의 가장 큰 분수령이었다. 1987년 '서울의 봄'은 군부 독재와의 결별 기대로 차올랐고, 김대중·김영삼 '양김' 단일화가 최대 화두였다. 하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한 단일화는 노태우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0년 후,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연합한 반면, 이인제 전 의원이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독자 출마해 보수 표가 갈라졌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1.6%포인트 차이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진보와 보수 모두 단일화를 통한 확장성이 승리의 조건으로 각인됐다. 양측의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 외에 중간지대의 지지를 끌어와야만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정몽준 전 의원과 여론조사 방식 단일화를 통해 전세를 뒤집었다. 두 사람의 '러브샷'은 단일화 역사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정 전 의원이 대선 전날 단일화를 파기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당선됐다.
2011년은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며 정치판에 등장한 해이다. 제3지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이후 벌어질 단일화 이슈의 핵심 인물이 된 출발이기도 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 결과로 사퇴했고, 안 후보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박 전 시장은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의 통합경선을 거쳐 단일 후보가 됐고, 나경원 후보를 눌렀다.
단일화는 불리한 진영의 주요한 해법이지만 만능 키는 아니다. 무엇보다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안 후보가 이명박 정권 연장을 막겠다며 단일화 협상을 벌였지만 양측 간 의견 차가 컸다. 결국 안 후보가 백의종군 선언을 하면서 일단락됐으나, 중도 사퇴 성격이 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안 후보는 이번에도 단일화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상대는 국민의힘으로 바뀌었다. 상처를 얼마나 줄이면서 보수야권 단일화가 이뤄질 지 여부가 서울시장 선거의 주된 관건 중 하나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