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앞두고 인터뷰…'문화재청·종로구청' 태도에 섭섭함 드러내
유교의 변신 "생활 속 인성교육" 강조…팔순 넘어 딴 '북한학 박사학위' 눈길
손진우 성균관장 |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명륜3가에 있는 성균관 문묘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성균관 문묘를 관리하는 종로구청이 경내에 있는 나무의 전지작업을 위해 크레인으로 사다리차를 들어 올려 동삼문(東三門) 지붕 너머 안으로 옮기려다가 그만 차가 동삼문 지붕 위에서 추락한 것이다.
다행히 사고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문화재 지붕 기왓장들이 크게 파손됐다.
당시 사고 장면을 본 목격자는 15일 기자에게 "차가 지붕 위로 떨어지더라"면서 "이전에 그런 일이 없었다. 서까래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혀끝을 찼다.
동삼문은 '보물 제141호'로 지정된 성균관 문묘 문화재 일부다.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문묘에서 제를 지낼 때 임금이 드나들었던 문이다.
15일 성균관 옆 유림회관 집무실에서 만난 손진우(86) 성균관장은 동삼문 지붕이 파손된 일을 묻자 당시가 떠오른 듯 목소리가 올라갔다. 그는 직원들에게서 사고를 전해 듣고서는 황당했다는 듯 그때 감정이 표정에 묻어나기도 했다.
"크레인을 이용해 차를 (문화재) 지붕 위로 올린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에요. 생전 처음 있었던 일입니다. 가지치기하려고 했던 은행나무가 500년은 됐고, 높이가 엄청 높거든요. 비계를 설치해서 하면 될 일을 돈이 많이 드니 그렇게 한 것이죠."
사고가 난 뒤로 문화재청과 종로구청, 소방서 관계자들이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자 동삼문 파손 현장을 찾았는데, 정작 성균관 쪽에 누구 하나 찾아와 유감의 말을 전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문묘 동삼문(보물 제141호) 덮친 사다리차 |
성균관이 국가 소유 문화재 시설이긴 하나 매년 그곳에서 제사를 올리고, 행사를 열며 유교 문화의 전통을 이어온 유림 입장에서는 내심 골이 날 만한 일이다.
성균관 문묘는 종로구청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관리한다. 이번 사고도 종로구청이 관련 업체에 일을 맡겨 진행하다가 난 것이다.
"(성균관이 동삼문과) 아무 관계가 없는 양 볼일 보고 갔다는 게 저로서는 섭섭하죠. 우리가 전혀 관련 없는 단체인 양 그러네요. 사과 한마디 없네요."
지난해 '코로나19'로 거듭 미뤄지는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돼 임기 3년의 관장 업무를 시작한 그는 지난 한 해가 뜻한 대로 이뤄지지 않은 듯 아쉬움이 커 보였다.
손 관장은 유교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유산처럼 여겨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제 성균관이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활교육'을 꼽았다.
윤리와 도덕, 효와 공경 등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한 가치이지만 이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소위 '꼰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보니 성균관 유림도 현세대에 맞게 눈높이를 낮춰서 삶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아간다'는 의미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목표로 젊은 세대 '인성교육'을 하고자 했어요. 옛것을 공부하며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나가는 것이죠. 하지만 코로나다 보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한 해가 지나갔어요. 그래도 인성교육, 이것이 성균관의 존재 목표요, 가치예요."
손진우 성균관장 |
성균관은 작년 3월부터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석전과 공부자탄강일(공자탄신일·9월 28일) 등 주요 행사 규모를 크게 줄였다. 예년이면 야외에서 치르는 행사에 전국적으로 1천 명 정도가 왔는데, 지난해 두 행사 모두 100명 남짓만 참석을 허용했다. 그런 덕분인지 성균관 유림 사이에서 코로나 확진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그는 반겼다.
포항 출신인 손 관장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70년 화학회사를 창립해 키운 기업인 출신이다. 경주(월성) 손씨 중앙종친회장, 제32대 성균관 부관장, 수석부관장,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이력을 보면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팔순이 지난 나이인 2015년 북한대학원에서 통일정치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점, 하나 더 든다면 그런 뒤로 2017년부터는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이제는 '교류'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어진 남북 관계 해법을 물어봤다.
"제가 아는 지식으로는 통일은 힘들지 않나 해요. 그럼 남북이 공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체제는 달리하더라도, 민족 동질성이 있으니 서로 왕래하고 돕는 것이죠. '너도 부자 되고 나도 부자 되자'는 겁니다. 우리는 아직도 전쟁 중이죠. 이게 민족의 불행입니다. 적어도 이 상태는 없어져야 하며 평화 체제가 정착돼야 한다고 봅니다. 통일은 조건이 될 때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성균관에서는 최근 유교의 대표 경전인 '사서(四書)'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한글로 풀이한 '휴대용 사서'를 발간했다. 그간 몇몇 전문 학자들이 사서를 펴냈으나 한문 어투 중심에 모호한 해석으로 독자에게 어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성균관, '전교선임' 고유례 |
성균관의 휴대용 사서는 내용을 쉽게 풀면서도 기독교의 성경이나 불교의 반야심경처럼 가르침의 핵심을 담은 경전을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했다. 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 등을 한 권으로 묶으면서 '휴대용'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게 된 것이다.
"사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활철학'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이 책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저마다 인간관계를 잘 설정하면 만인이 좋아하는 사회, 전쟁과 싸움이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죠. '대동(大同) 사회'가 바로 인본주의 세상입니다."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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