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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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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1인 출판사는 고사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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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미얀마에서, 예멘에서 도처에 죽음이 널려 있는데 뉴스에 나오는 학살 장면을 차마 볼 수 없어 채널을 돌린다. 지금 미얀마 사태의 열쇠를 쥐고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미얀마 군부와 사전에 모종의 교감을 한 게 아닌가? 공감은 아니더라도 쿠데타 지휘부에 침묵의 사인을 준 게 아닌가? 나는 의심한다. 강력한 이웃인 중국이 가만있으니 미얀마 군부도 겁날 게 없다.




아웅산 수치의 잘못도 있다. 외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던 그녀 아닌가. 미얀마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된 뒤에 군부를 길들일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정부군에 의한 소수민족 모슬렘 인종청소를 묵인하며 그녀는 군부세력 견제에 실패하지 않았나.

이런 이야기를 내가 해봤자 미얀마에 들리지도 않는다. 차라리 미얀마에 마스크나 의약품을 보내는 게 낫지. 한가한 토요일 아침, 오늘은 도시락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데 일찍 일어났다. 요즘은 일주일에 세 번, 월·수·금요일에만 어머니가 드실 음식을 만들어 요양병원에 전달하고 주말은 쉰다.

코로나에 갇혀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다. 수영장은 문을 닫았고 친구들과 술도 못 마신다. 이미출판사 매출이 지난달에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돼 책을 홍보할 방법이 없다.

인터넷에 서툴러 요즘 대세인 유튜브 동영상이나 ‘줌’을 이용한 독자와의 대화는 엄두도 못 낸다. 코로나 이후로 출판계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돼 광고를 많이 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에 독자들이 몰리고 1인 출판사는 고사 직전이다. 인터넷서점과 전자책 선호도가 커지면서 광고를 통해 자주 노출된 책들과 그렇지 않은 책들이 받는 대접이 크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실용서나 아이들 참고서를 사려고 서점에 들렸다가 판매대에 꽂힌 시집에 눈길을 주는 독자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검색창에 뜨는 책들만 베스트셀러가 된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표지가 나오지 않으면 외면당하기 쉽다. 광고비를 감당하기 힘든 작은 출판사들은 낭독회나 사인회, 기자간담회 등을 하지 않으면 신간을 홍보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걱정에 집중이 되지 않아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다시 시를 쓰고 있다. 1인출판사를 차렸는데 상황이 좋지 않다고 책을 내지 않을 수도 없어, 신간 시집을 준비 중이다. 발동이 걸려 매일 시를 쓴다.

어제의 시를 고치고 마트에서 장을 봤다. 별로 산 것도 없는데 5만원이 찍힌다.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내가 자주 가는 동네 식당도 5000원이던 떡만둣국 값이 지금 7000원으로 올랐다. 재난지원금이 시중에 많이 풀린 탓이다. 자영업자 지원금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10인 이하 모임을 허락해주기 바란다. 경제활동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코로나로 ‘집콕’이 지속되면서 내 주변 지인 대부분이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가 길어지며 내가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은 더 공격적이 됐다.

백신이 나왔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금방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4세기 창궐한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절반이라는 주장도 있다)이 넘는 수백만명이 희생됐고, 18세기까지 몇 백년 동안 유럽인을 괴롭혔다.

바이러스를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것은 인류의 오만이다. 코로나와 싸우지 말고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좀 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역 지침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시인·이미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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