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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지지자임에도 이낙연 대표에 달걀 던진 이유? “유적 위 레고랜드 건설 멈춰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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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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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와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강원 춘천시의 중도 유적이 레고랜드 건설로 인해 파괴되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제작한 포스터. 포스터는 어린 시절 갖고 놀던 동심의 상징인 레고 장난감들이 한국 고대 유물인 빗살무늬토기를 부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반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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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강원 춘천시 중앙시장을 방문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달걀을 맞았다. 달걀을 던진 여성은 바로 이정희 중도유적지킴본부 대표다. 여당 대표가 달걀을 맞은 사실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정작 이정희 대표가 ‘왜’ 달걀을 던졌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6일 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달걀을 던진 이유를 물었다. 그는 “저는 원래 이낙연 대표 팬이고,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라며, 그럼에도 인류의 유산인 ‘유적’ 위에 테마파크인 ‘레고랜드’를 짓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중도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춘천시 의암호 가운데에 위치한 섬이다. 2011년 강원도는 중도에 레고 장난감을 테마로 한 공원인 레고랜드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강원도 측은 레고랜드가 생기면 200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2013년 문화재연구기관들의 조사 결과 중도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규모가 106만㎡에 달했다. 160여기의 고인돌 무덤 등 3000기가 넘는 유구가 나왔고, 귀걸이·토기·검·도끼 등 유물도 많았다. 문화재연구기관들은 중도 유적을 ‘한국고고학 역사상 최대의 청동기 시대 마을유적’이라고 평가했다.

시민들이 “유적이 발굴된 땅 위에 테마파크를 지어서는 안 된다”며 레고랜드 건설 반대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는 유적의 일부만 보존하기로 하고 레고랜드 건설을 허가했다. 레고랜드 건설이 진행됐고, 당장 내년 개장할 수 있는 상황이다. 유적 훼손을 막으려는 시민들 싸움은 8년째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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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 가운데)가 지난 5일 오후 강원 춘천시 중앙시장 방문 도중 달걀을 맞고 몸을 움츠리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유튜브(강원도민TV)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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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부지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유적, 총 3300기의 유구가 확인됐다. 이형구 교수 제공·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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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대표는 이낙연 대표가 춘천 중앙시장을 방문하기 하루 전날, 국제컨벤션센터 건설이 행정안전부 심사를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국제컨벤션센터는 레고랜드의 주차장 마련을 위해 추진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사비의 상당수가 강원도 예산으로 충당된다.

“레고랜드 사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시작됐어요. 전세계 문명사를 바꿀만한 유적이 나왔는데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레고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거예요. 문재인 정부에서는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더 많이 진행됐어요. 알고 보니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스마트토이 사업’이 있었고, 그 안에 레고랜드가 포함돼 있었어요. 우리는 설마 이 정부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 놀랬어요. 청와대·정부서울청사·정부세종청사에 모두 찾아가 국제컨벤션센터를 절대 승인하면 안 된다고 알렸는데 그대로 승인됐죠.”

돈과 개발 논리가 유적 보존보다 우위에 서는 게 맞을까. 이 대표와 중도유적지킴본부 회원들은 지난해 5월부터 레고랜드 건설 현장에 텐트를 쳤다. 중도 유적을 지키기 위한 농성이다. “(중도 유적에서) 160개 이상의 아름다운 초기 고인돌이 나왔거든요. 그런데 (레고랜드 건설 때문에) 우리가 본 적이 없는 고인돌을 다시 다 매립을 했어요. 중도 유적으로 끝날 일이 아니예요. 문화유적을 개발하는 제2의 중도, 제3의 중도가 계속 나온다는 거죠. 유적은 우리 국민과 민족, 전세계 인류의 유산이고 아이들의 재산이잖아요. 우리 딸이 그때(유적 위에 레고랜드를 지을 때) 엄마 뭐했느냐고 물으면 창피할까봐 저는 이렇게 반대운동을 하는 거예요.”

이 대표의 직업은 작가다. 그는 달걀을 던지기까지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다. “제가 보통 사람인데, ‘이낙연 대표가 무슨 죄가 있나’ 이런 마음이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당 대표잖아요. 저는 이낙연 대표를 좋아하지만 당 대표이기 때문에 달걀을 던진 것이죠. (레고랜드 건설을) 민주당이 하니까요. 중도 유적을 지키자고 운동하고 있는 분들은 진보나 보수가 아니예요. 그냥 생업을 가진 국민들이예요. 사업가도 있고, 저는 작가고, 누구는 회사원이예요. 어떻게 세력화를 하는지도 모르는데 유적을 무조건 지켜야 되니까 나선 사람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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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중도 유적 위에 쳐진 ‘지킴 텐트’들의 모습. 유적 위에 레고랜드를 건설하는 것을 반대하며 눈이 오고 추운 한겨울 날씨에도 시민들은 농성을 계속했다. 이정희 중도유적지킴본부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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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0일 레고랜드 인근의 국제컨벤션센터 건설을 반대하는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에 방문한 이정희 대표(맨 왼쪽) 등 중도유적지킴본부 회원들. 이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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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를 향한 ‘공개서한’을 별도로 작성해 기자에게 보내왔다. 그는 공개서한에서 “코로나19로도 1조원을 쓰는 우리나라가 도대체 문화유산 위에 놀이시설을 지어야 할 만큼 가난합니까, 미개합니까?”라며 “이 정부의 복합테마파크 사업 속에 있는 춘천 레고랜드는 2500만 수도권 시민의 상수원을 오폐수와 플라스틱 환경호르몬으로 오염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레고랜드에 배정된 예산을 중도유적 보존으로 바꾸라고, 매국하면 안 된다고 애타게 알렸는데 몰랐다면 이제라도 관심을 가지고 결단해달라”며 “조상묘를 파헤치고 매립하는 반문명을 끝내달라”고 했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레고랜드 사업으로부터 중도 유적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반크의 중도 유적 캠페인 사이트: goindol.prkorea.com) 반크에서 만든 글로벌 홍보포스터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세계적인 유적지인 영국 스톤헨지·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집트 피라미드·로마의 콜로세움·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페루의 마추픽추를 허물고 그 자리에 레고랜드가 세워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반크는 중도 유적 지키기 홈페이지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전세계인들은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라며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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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중도 유적 캠페인 글로벌 포스터. 반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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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대표는 지난 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저는 그 분들(달걀을 던진 사람)을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경찰에 알렸다”며 “그 분들로서는 간절히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셨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문화재를 지키려는 열정과 탄식을 이해한다”며 “문화재 당국 및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꽤 오랫동안 대화했다고 하지만 안타깝다”고 했다. 이 대표는 9일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다.

레고랜드 중단촉구 범시민대책위원회는 달걀 투척과 관련해 낸 입장문에서 “계란 투척 사건은 대책위와 무관한 일이며 이낙연 대표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한다”며 “주장과 항의의 정당성이 물리력 행사까지 용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대책위는 “사건의 본질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강원도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혈세 낭비 사업의 강행에서 기인한다”며 “선사유적 보존 문제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달라”고 했다.

▶관련기사: “서양식 블록 장난감 놀이 때문에 국내 최대의 청동기 마을 유적 파괴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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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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