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조선 5대 궁궐별 소장 현판 첫 분류 확인
일제강점기 철거후 따로 관리돼…현판 385점 원래 위치 파악
창덕궁 내 '대은원 중수 내용을 새긴 현판' |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창덕궁 내 '대은원(戴恩院) 중수 내용을 새긴 현판'을 내관이 썼다고 4일 확인했다.
고궁박물관은 소장 현판 대부분이 일제강점기 궁궐의 여러 전각이 철거된 후 따로 관리됐는데 원래 걸었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번에 5대 궁궐별로 처음 현판 분류 작업을 하며 위치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영조 1년(1725) 대은원이 오래되고 비바람으로 서까래가 무너져 내리자 대은원 중수 작업이 진행됐다. 고궁박물관에 따르면 대은원 수리를 지시한 오두흥, 현판 내용을 쓴 조한경, 글씨를 쓴 이인재 모두 내관이다.
고궁박물관은 내관들이 머물렀던 내반원 바로 남쪽에 대은원이 있었다는 것 등을 근거로 내시부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전각으로 추정한다. 또 내관이 쓴 글과 글씨로 만들어진 이 현판이 매우 희귀하다고 본다.
국립고궁박물관이 발간한 '조선왕실의 현판Ⅰ' |
고궁박물관은 이런 내용이 담긴 '조선왕실의 현판Ⅰ'을 발간했다. 소장한 현판을 단편적으로 소개한 적은 있지만, 5대 궁궐별로 분류해 소장품 도록 형태로 공개하는 건 처음이다.
조선의 궁궐은 국가 운영의 공간이자 왕실의 생활 터전으로 유교 통치 이념 등을 반영해 세워졌다. 궁궐의 여러 전각과 건물의 성격과 가능에 따라 좋은 글귀를 따 이름을 짓고 현판으로 만들었다.
현판에는 국왕에 대한 추모, 신하나 후손에게 내린 지침, 조선의 국가 이념, 왕실이 추구한 가치관 등이 함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왕 또는 당대 명필가의 글씨를 받아 장인들이 새겼고, 화려한 문양과 조각으로 장식했다.
고궁박물관이 시기를 확인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효종 3년(1652) 이정영이 쓴 '옥당 현판'이다. 창덕궁 홍문관에 걸었다고 추정한다. 가장 최근 것은 광무 6년(1904) 덕수궁 화재 이후 제작해 덕수궁에 건 현판들이다.
이 도록에는 경복궁(184점), 창덕궁(91점), 창경궁(44점), 경희궁(41점), 덕수궁(25점) 등 현판 385점과 현판이 걸린 장소가 불분명한 참고도판 13점 등 398점이 수록됐다. 현판이 걸린 장소를 추적한 내용도 포함됐다.
현판 뒷면에 원래 걸렸던 위치가 적힌 묵서(墨書)와 '경복궁배치도', '북궐도형', '동궐도', '서궐도안' 등 도면과 회화, 유리건판, 사진 등을 비교해 본래 현판이 걸려있었던 궁궐과 건물을 추적했다고 덧붙였다.
경복궁 근정전 동행각의 융문루(위쪽)와 서행각의 융무루에 걸었던 현판 |
고궁박물관은 1980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간한 '한국의 고궁'에 수록된 1958년경 사진 자료를 통해 경복궁 근정전 권역의 융문루(隆文樓), 융무루(隆武樓) 현판의 원래 위치를 파악했다.
또 양화당, 대은원 현판을 만들 때 양각이나 음각뿐만 아니라 금박을 붙이거나 나무 등으로 글자를 따로 만들어 부착한 제작 방식을 의궤 기록과 실물 현판을 통해 확인했다.
독일인이 소장하고 있는 1902년 촬영 사진을 통해 덕수궁 정문의 인화문(仁化門) 현판이 본래 걸려있었던 모습도 새롭게 확인했다.
도록은 국공립 도서관과 박물관 등에 배포될 예정이며, 문화재청과 고궁박물관 누리집에서도 볼 수 있다. 고궁박물관은 종묘, 능원묘(陵園墓), 사묘(祠廟), 수원 화성 등에 걸었던 현판에 대한 조사 및 연구 결과를 담아 올해 12월 '조선왕실의 현판Ⅱ'를 발간할 계획이다.
숙종이 쓴 창덕궁 규장각 현판(위쪽)과 선조가 쓴 창덕궁 존덕정 현판 |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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