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마이크 잡았다가 간첩 몰려…청문회 증언·여성동지회 조직 등 투쟁 지속
'5·18 가두방송' 전옥주 씨 생전 모습 |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우리 민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도청으로 모입시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사람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 전옥주 씨가 16일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가두방송을 한 여러 방송원 가운데 전씨는 차명숙 씨와 함께 항쟁 초기의 가두방송을 주도했다.
그의 생전 증언록 등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막내 이모 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돌아온 5월 19일 저녁 31살의 전씨는 항쟁의 소용돌이에 발을 들였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에 찾아간 금남로에선 군용 트럭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시민들의 분노가 고조되고 있었다.
전씨도 시위대에게 물을 길어 주거나 눈 밑에 치약을 발라주는 등 돕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얼떨결에 손을 보태게 됐다.
그러다 시위 학생들이 쓰던 핸드 마이크가 고장 난 것을 봤다.
불현듯 동사무소에 가면 스피커와 마이크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 그는 학생 2명을 데리고 인근 동사무소 옥상에서 스피커와 앰프, 마이크를 떼어왔다.
학창 시절 웅변을 해 목소리가 우렁차고 낭랑하다는 이유로 전씨가 마이크를 들고, 나머지 학생 2명이 스피커와 앰프를 들고 걸어 다니면서 방송을 시작했다.
그것이 전씨의 첫 가두방송이었다.
잠시 후 시위대의 소형 트럭이나 버스에 여러 차례 옮겨 타며 밤새 방송하게 됐다.
이때까지 무용을 전공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전씨는 마땅한 운동가 등을 알지 못해 "도청으로 모여달라"고 외치거나 아리랑을 개사해 불렀다.
대치하는 5·18시민과 계엄군 |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자 전씨의 발언도 점점 격해지며 '세무서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등의 다소 과장된 내용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더욱이 누군가가 건넨 쪽지에 쓰인 대로 '서울에서 지원을 온 학생들이 담양에 있다'라거나 '화순으로 오고 있다'는 등 허위 내용을 전했다가 간첩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시민으로 위장한 사복 군인의 소행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증언했다.
전씨가 가두방송을 하는 모습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배우 이요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항쟁 이후 전씨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5월 27일 계엄군의 최후 진압 작전 직후 또다시 간첩으로 몰려 계엄군에 끌려간 전씨는 모진 고문을 당하며 "간첩이라고 인정하라"는 '거짓 진술'을 강요받았다.
군인들은 그를 간첩으로 기정사실화하고 '모란꽃'이라고 불렀다.
이 과정에서 성고문도 자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군사 정권의 '간첩 만들기'는 실패했고, 전씨는 내란음모 등 혐의로 같은 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4월 사면으로 풀려났지만 86년까지 수사기관의 미행·도청 등 감시가 계속됐다.
거주지에서 4㎞를 벗어나면 경찰서에 신고해야 했고, 느닷없이 수사관이 집에 들이닥쳐 집기류를 헤집어 놓는 것도 다반사였다.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까지 겹치며 고통 속에 숨죽여 살던 전씨는 1988년 5·18 청문회 증인으로 나서며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당시 증인으로 나온 군사 정권 관료들이 5·18에 대해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엄군에게 붙잡힌 여성들 |
청문회에서 5월 항쟁의 실체를 낱낱이 증언한 전씨는 그 대가로 며칠 뒤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고 살해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굴하지 않은 전씨는 갖은 방해 공작을 무릅쓰고 5·18여성동지회를 조직하는 등 투쟁을 이어갔다.
전씨의 별세 소식을 들은 한 지인은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지만, 사람이 죽어가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다며 언니는 항쟁에 뛰어들었다"고 회상하며 "부디 고문과 폭력 없는 세상으로 훨훨 날아올라 언니의 꿈을 마음껏 펼치시라"고 애도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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