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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과 2018년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과 현대자동차가 미국계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공격을 받았을 때 시장에서는 토종 사모펀드(PEF)의 백기사 가능성을 기대했다. 하지만 토종 PEF는 국내 자본시장법에 발목이 잡혔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는 없는 PEF 이분법 규제 때문이다. 경영참여형 PEF는 기업투자 시 지분 10% 이상을 확보해야 하고, 전문투자형(헤지펀드)은 경영참여를 하게 될 경우 의결권 행사에 제한을 받는 구조다.
토종 PEF는 국내법에 따라 당시 시가총액이 25조~30조원에 달하는 삼성물산이나 현대차에 백기사를 서기 위해서는 최소 2조5000억원에서 3조원 이상(지분 10%)의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야 하는 벽에 막혔고, 헤지펀드는 경영참여 시 소수 지분까지 의결권을 제한받기 때문에 제약이 따랐다. 그 사이 엘리엇과 같은 해외펀드는 삼성물산 5%, 현대차 3% 지분을 확보하고 경영권 공격을 가했다. 역차별 규제에 국내 기업뿐 아니라 적재적소에 자유로운 투자를 할 수 없는 국내 PEF도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역차별은 투자뿐만 아니라 기업 대출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해외펀드는 국내에서 자유로운 대출을 취급할 수 있지만 국내 PEF는 대출을 통한 수익 추구 행위가 금지돼 있다. 투자과정에서도 차입을 통한 투자는 재산의 10% 이내로 제한을 받으면서 레버리지를 일으켜 대형 투자를 하는 것도 어렵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미 3년 전부터 이원화시킨 PEF와 헤지펀드 구분을 폐지하고 지분 보유 의무규정이나 의결권 제한을 폐지하며 차입투자, 대출도 가능하도록 개선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관련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회기 종료로 자동폐기됐고, 지난해 다시 발의됐지만 진척이 없는 상태다.
개선안을 발의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PEF는 우리 경제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기업 구조개선·M&A 및 성장에 필요한 대규모 민간자금을 공급하는 순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음에도 관련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며 "기존 투자형 펀드에는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토종 PEF는 해외펀드에 비해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호 PEF운용사협의회 회장(IMM 소속)은 "해외펀드는 국내 규제와 상관없이 투자하는 데 반해 국내 PEF는 지분 제한이나 사외이사 선임 규정 등 투자에 제약이 많다"며 "투자 자율성을 열어주면 국내 자본시장이나 기업 발전을 위해 기여할 기회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라임이나 옵티머스 같은 사기성 펀드를 막기 위해 투자자 보호장치를 강화한 개인 PEF와 장기투자를 할 수 있는 기관 전용 PEF 등을 구분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PEF의 주요 투자자인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공제회를 중심으로 기관 전용 PEF 라인을 구축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 없이 국내 자본시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국내 PEF 평가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PEF는 기업구조 개선과 대기업 구조조정 등에 참여하며 지난 15년여 간 질적·양적 성장에 기여했다.
국내 PEF는 2004년 말 2개로 시작해 2019년 말 721개로 부쩍 늘었고 같은 기간 약정액은 4000억원에서 84조3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연평균 PEF 증가율은 31.9%로 이들 PEF가 활용하는 투자약정액은 연평균 22.9%나 늘어났다. 질적인 측면도 우수하다. 국내 PEF는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총 879건의 투자를 단행했으며 이 중 30건만이 투자 실패로 집계됐다. 투자 실패율은 단 3.4%로 글로벌 PEF의 평균 투자 실패율 6% 대비 성공적인 투자를 진행한 셈이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부 전문투자형 PEF의 불법행위와 환매중단과 관련해 다양한 운영 방식으로 사모펀드 용어가 통칭되면서 부정적인 인식이 과도하게 부추겨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16일 김병욱 의원과 국회입법조사처 주최로 열린 '금융소비자보호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사모펀드 규제합리화 방안' 세미나에서는 PEF에 대한 규제 완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최원준 JKL파트너스 전무는 "지난해 라임·옵티머스 사태 핵심은 파편화된 개인투자자들로 펀드가 구성되면서 운용사를 관리·감독할 수 없었던 점에 있다"며 "순수 기관투자가만으로 구성된 PEF의 경우 선진국 수준으로 규제를 풀어 모험자본 공급 역할을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형준 금융연구원 박사는 "PEF시장은 '선수'들만의 시장으로 관리하고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도 대안"이라며 "개인의 경우 연기금과 공제회 등 대형 기금기관을 통해 간접투자를 하는 것이 투자자 보호나 금융감독을 위해서도 보다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수환 국회입법조사처 변호사는 "기관 전용 PEF의 자율성을 보장해 지분보유 의무, 대출 등 규제를 완화할 경우 해외펀드와의 역차별 해소뿐만 아니라 정부가 추진 중인 뉴딜·인프라 펀드에도 자금을 조달하는 기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진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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