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1년 비상사태” 수지여사 감금
작년 총선서 NLD에 과반 빼앗긴뒤, ‘부정선거’ 핑계로 줄곧 쿠데타 시사
지도자 모이는 의회 개원일 기습
양곤 등 주요도시 인터넷-전화 끊겨… 국제사회 “민주주의 훼손” 강력 비난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왼쪽)이 1일(현지 시간) 군부 쿠데타로 감금됐다.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사령관(오른쪽)이 2016년 수지 고문, 군 관계자와 함께 있는 모습. 네피도=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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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가 1일(현지 시간)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화 상징’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76)을 감금하고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989년부터 2010년까지 21년간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구금과 석방을 반복했던 수지 고문은 10년 만에 다시 구금됐다. 2015년 총선 승리로 이듬해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 정부가 들어섰던 미얀마는 5년 만에 다시 민주화 붕괴 직전에 몰렸다.
미얀마 군부는 이날 오전 수지 고문과 집권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고위 인사를 구금한 뒤 군이 소유한 TV 방송을 통해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권력이 이양됐다”고 선언했다. 이어 “1년간의 비상사태 후 총선을 다시 치러 승자에게 권력을 돌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은 지난해 총선으로 출범한 의회 개원일이어서 NLD 주요 지도자가 모두 행정수도 네피도에 모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지 고문은 구금되기 직전 NLD 페이스북을 통해 “군부의 행동은 미얀마를 다시 군부독재 밑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며 “나는 국민을 향해 쿠데타를 받아들이지 말 것과 군부 쿠데타에 대항해 항의 시위를 벌일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수지 고문은 1962년부터 53년간 이어져 온 군부 독재에 맞서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왔다. 이 과정에서 1989년부터 1995년까지 6년간 가택 연금됐고, 이후에도 2010년까지 구금과 석방을 반복해 겪었다. 수지 고문은 민주화 운동 공로로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2015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군부 독재를 종식시켰고 이듬해 민주 정부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2017년 이슬람 난민인 로힝야족 학살 사태를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국제사회에서는 “노벨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미얀마 군부는 민주화 이후에도 실권을 놓지 않으며 수지 고문과 민주 정부를 압박해왔다. 상하원으로 이뤄진 미얀마 의회는 전체 의석 664석 가운데 25%인 166석을 군부가 임명하도록 돼 있다. 정부 핵심 부처로 꼽히는 내무, 국방, 국경경비 부처 장관 임명권도 군부에 있다.
수지 고문이 이끄는 NLD는 지난해 총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선거가 취소된 지역을 제외하고 476석 중 396석을 차지했다. 군부가 이끄는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선거 전 ‘총선 연기’를 요구했고, 선거 뒤에는 부정 선거 의혹을 주장했다. 최근에는 “군부가 정권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다”며 노골적으로 쿠데타 위협을 했고 결국 감행했다.
미얀마는 혼란에 빠졌다. 네피도, 최대 도시 양곤 등에서는 인터넷과 전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국영 TV와 라디오는 ‘기술적 문제’로 방송 중단을 알렸다. 전국의 모든 은행도 문을 닫았다. 양곤 국제공항도 폐쇄돼 미얀마 국내 및 국제선 운항이 중단됐다.
국제사회는 군부를 강력 비난했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은 총선 결과를 뒤집거나 미얀마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시도에 반대한다. 현 상황이 철회되지 않으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수지 고문의 석방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국제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중국, 인도와 국경을 접한 미얀마는 최근 새로운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군부 독재 시절에는 중국 의존 노선을 취해왔지만 민주 정부 이후에는 미국과도 거리를 좁히며 ‘등거리 외교’를 해왔다. 이 때문에 미얀마 군부 정권 출범을 둘러싸고 미중 간 힘겨루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은택 nabi@donga.com·김예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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