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1월 26일 일본열도를 감동시킨 ‘살신성인’ [오래 전 ‘이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0년 전인 2011년 경향신문에는 ‘[어제의 오늘]2001년 이수현씨, 일본인 구하다 사망...일본열도를 감동시킨 살신성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가 실린 때로부터 10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0년 1월 26일 일본에서 취객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숨진 고 이수현씨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당시 기사를 아래에 옮겨보겠습니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일본 도쿄 야마노테센 신오쿠보역 역사 한쪽 벽의 동판에는 한글로 이런 글이 적혀 있다.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2001년 1월26일 오후 7시15분쯤…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하고…용감히 선로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려다 고귀한 목숨을 바쳤습니다…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자 여기에 이 글을 남깁니다.’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난 이씨는 운동을 좋아하는 활발한 성격의 대학생이었다. 고려대 무역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씨는 ‘한·일 교역 부문에서 확실한 1인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아카몬카이’ 일본어 학교에 입학해 최상위 성적을 기록하며 꿈을 키워갔다. 어느 날 저녁, 이씨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신오쿠보역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술에 취한 한 승객이 반대편 선로로 추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씨는 즉시 선로에 뛰어내려 그를 붙잡고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한 사람이 더 선로로 내려와 거들었다. 바로 그 순간 전차가 진입했고, 셋은 함께 전차에 치여 숨졌다. 또 한 사람은 일본인인 것으로 밝혀졌고, 이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관계였다. 당시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술 취한 승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던진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며 이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크게 보도했다. 일본 사회는 그를 의인(義人)이라 칭하며 추모했다.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의 정신은 이어지고 있다. 한·일 교류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이씨의 뜻을 살려 일본으로 유학 오는 한국 등 아시아 유학생들을 지원하는 ‘이수현 아시아 장학기금’이 10년째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485명의 유학생이 이 기금으로 공부했다.

기일마다 도쿄로 이씨 부모를 초청해 열어온 ‘추모 모임’은 이씨 부모의 건강과 일정상의 이유로 올해 10주기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장학기금 실행위원회는 “자체적으로 추모행사를 더 다양하게 펼쳐 나갈 것”이라며 “일본인들은 이씨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의 이야기는 2008년 한·일 합작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제2·3의 이수현이 훈훈한 미담을 전하고 있다. 2006년 유학생 신현구씨가 같은 장소인 신오쿠보역에서 여학생을 구했고, 지난해에는 도쿄대 박사과정 중인 이준씨가 도쿄 지요다센 네즈역에서 60세의 남성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등 용감한 행동으로 일본 열도에 감동을 주기도 했다.

경향신문

2000년 당시 26세였던 고 이수현씨는 도쿄 도심을 순환하는 JR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 플랫폼에서 취객을 구하기 위해 선로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씨는 열차를 피하지 못했고, 함께 취객을 구하려 선로로 내려간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당시 47세)와 함께 숨지고 말았습니다.

생면부지인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씨의 살신성인은 일본을 감동시켰고, 그에 대한 추모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졌습니다. 10년 전 기사에 실린 것처럼 현지에서 구성된 추모 모임은 이씨의 10주기까지 이씨 부모를 초청해 왔고, 이씨의 뜻을 살린 장학기금도 운영됐습니다. 2008년에는 이씨를 기리는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고, 일본에서는 이씨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2편까지 개봉했고, 3편이 제작 중입니다. 이씨를 기리는 시 15편을 엮은 시집 <한국의 별, 이수현군에게 바친다>를 펴낸 일본인도 있습니다. 이씨의 어머니 신윤찬씨는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그간 아들을 추모하는 일본인이 보낸 편지만 2300통”이라고 말했습니다.

20주기를 맞아 일본 현지에서는 26일 이씨에 대한 추도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일본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20주기 추도식은 신주쿠구 한국상인연합회가 주최하고, 고인이 일본 유학 시절 다녔던 아카몬카이(赤門會) 일본어학원과 고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설립된 LSH아시아장학회가 주관해 열립니다. 한국 정부는 추도식에 정세균 총리 명의 조화를 보낼 예정입니다.

또 주일 한국대사관은 대사관 유튜브 채널(youtube.com/kankantube)을 통해 고인의 삶을 담은 영화인 <가케하시> 온라인 상영회를 이달 27일부터 31일까지 진행할 예정입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씨의 20주기를 맞아 25일자 석간 1면 톱으로 ‘사람의 생명을 위해 그는 행동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경향신문

고 이수현씨.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나 이 같은 추모열기나 생전 이씨의 한·일 교류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마음과는 달리 양국 관계는 부침을 거듭해 왔습니다. 한류붐 등으로 민간 교류는 활발해졌지만 정부 간 관계는 2012년을 기점으로 냉각됐다. 이 같은 한·일 관계 악화에서 가장 책임이 큰 것은 과거사 갈등, 수출규제·불매운동을 불러일으킨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의 무책임하고, 역사를 잊은 듯한 망동이었습니다.

지난 22일 경향신문 오피니언면에 실린 칼럼 ‘[여적]한·일 가교 이수현 20주기’의 일부를 아래에 옮기면서 글을 맺겠습니다.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의 망동이 종지부를 찍고, 두 나라가 그나마 남아있는 가교만이라도 튼튼히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경향신문

올해 20주기를 맞은 의인 이수현씨 생전 모습. 부산한일문화교류협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모리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씨를 ‘한·일 우정의 가교(가케하시)’라고 했다. 한·일관계는 이 가교라도 남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경이 됐다. 하늘에 있는 이씨도 유감일 것이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 그 법들은 어떻게 문턱을 넘지 못했나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