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끼친 손해를 배상하라는 한국 법원 판결에 대해 23일 일본 정부가 시정을 요구하자, 외교부는 “일본도 피해자들의 상처 치유를 위한 진정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날 ‘일본 측 담화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에서 “위안부 피해자들과 상의하며 원만한 해결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면서도 “일본 측 또한 스스로 표명했던 책임 통감과 사죄·반성의 정신에 입각해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진정한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한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담요와 모자가 씌워져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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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가 한·일 양국 정부 간의 공식 합의임을 인정한다”면서 “동시에 피해 당사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정부 간의 합의만으로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이어 “이에 따라 정부는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나, 피해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를 막을 권리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외교부는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전시 여성의 인권 유린이자 보편적 인권 침해의 문제로서, 국제인권규범을 비롯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담화에서 “(이 판결은) 국제법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즉각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면서 판결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때인 2015년 12월28일 한·일 정부는 일본 정부가 사과하고, 재단 설립에 10억엔을 출연하는 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고 확인하는 내용의 합의를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일 간 수출규제 문제,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양국이 여러 차원의 대화를 하고 있다. 그런 노력을 하는 중에 위안부 판결 문제가 더해져서 솔직히 좀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2015년도 양국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합의가 공식 합의였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놓고 정의기억연대는 “당혹스럽고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천475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문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비굴하다 느껴질 만큼 수세적 대응이나 완전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한국의 사법부가 열어젖힌 마지막 기회의 문이 한국 정부에 의해 허무하게 닫히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지난 8일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했다. 일본 정부는 다른 나라의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상의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워 소송에 불응해왔다. 항소 기간인 22일까지 일본 정부는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고 그대로 판결이 확정됐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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