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이슈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

공무원도 경찰도 아동학대 전문성 부족…'제2의 정인이' 또 나온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세종=박경담 기자, 기성훈 기자, 최민지 기자] [편집자주] 16개월 여아가 부모에게 학대 당하다 숨을 거뒀다. 학대 정황에 조금만 더 민감했어도, 분리만 됐어도 아이는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 삶이 행복했을까. 학대 사안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은 그렇다고 확답하지 못한다. 피해 아동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다각적으로 점검해본다.

[MT리포트]학대아동을 위한 곳은 없다 (下)


공무원·경찰 모두 아동학대 업무 기피…'제2 정인이'는 되풀이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국 시·군·구는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사건을 예방하고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아동학대 업무만 맡는 전담공무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수많은 아동학대 신고를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다른 아동학대 대응 기관인 경찰과 전담공무원 간 역할도 겹쳐 책임·업무를 서로 전가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전담공무원, 경찰, 현장 전문가 등이 아동학대 업무를 협업하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담공무원은 지난해 전국 229개 시·군·구 중 118개 시·군·구에 290명 배치됐다. 복지부는 올해 말까지 모든 지역에 전담공무원을 두고 인원은 664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턱없이 부족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조사 질 저하 우려

머니투데이

(양평=뉴스1) 송원영 기자 = 13일 오후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의 사진이 놓여 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는 이날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인이의 양모 장모씨와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등 혐의를 받는 양부 안모씨의 첫 공판을 열었다. 2021.1.13/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업무를 시작한 전담공무원은 사회복지사 자격을 갖춘 이로 주로 아동학대 현장조사를 맡는다. 기존에 민간단체인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이 담당했던 일이다. 아보전 소속 조사 인력은 민간이다 보니 학대 아동가구 방문을 거부 당하거나 위협 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공권력을 활용할 수 있는 전담공무원을 도입한 배경이다.

하지만 전담공무원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연간 아동학대 신고 건수 50건 당 전담공무원 1명을 배치하라고 시·군·구에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 4만1389건을 대입하면 모든 전담공무원 664명을 배치 완료하더라도 1명당 62건을 맡는 셈이다.

인력 부족은 아동학대 신고 조사의 질과 직결된다. 전담공무원 1건당 담당 신고 건수가 많을수록 학대에 시달리고 있을 아동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의미다. 현재 1~2명의 전담공무원으로만 굴러가고 있는 일부 시·군·구 아동학대팀 팀장급은 사회복지사 자격이 없는 일반직 공무원이 맡는 경우도 있다.



◇공무원도 경찰도 전문성 부족

머니투데이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에 대한 초동 대처에 문제가 있었던 양천경찰서 홈페이지에 비판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해 5월, 6월, 9월 무려 세 차례나 학대의심 신고를 접수했지만 학대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건을 내사 종결하거나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달아 송치한 바 있다. 이에 실명인증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글을 쓸 수 있는 양천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지난 5일 하루에만 500여개 비판 게시물이 올라왔다. 6일 서울 양천구 양천경찰서에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2020.1.6/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담공무원이 전문성을 기르기에도 녹록지 않다. 일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손을 떼겠다는 사람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인력 부족, 험한 현장 업무를 이유로 아동학대 부서를 기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 부족은 경찰도 같은 상황이다. 경찰 내부에선 아동학대 사건을 담당하는 학대예방경찰관(APO)을 담당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 그러다 보니 초짜 또는 하위 직급 경찰이 APO를 도맡고 있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APO 628명 가운데 경사 미만 하위 직급은 74.4%를 차지한다. 이제 갓 경찰이 된 순경 비율도 10.7%였다. 경찰은 가해 부모 민원 등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많은 APO는 업무 부담이 커 1년 내 보직 변경 비율이 40% 정도라고 설명했다.



◇경찰·전담공무원 아우르는 아동학대 컨트롤타워 필요

머니투데이

탁틴내일,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 아동인권단체 회원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아동의 죽음, 보건복지부장관과 경찰청장에게 묻는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있는 인력이라도 100% 활용하기 위해선 전담공무원과 경찰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는 지난 8일 아동학대 신고 접수 시 전담 기관이 수사, 조사에 착수하는 내용의 아동학대 처벌법을 통과시켰다. 현장에선 전담공무원은 조사, 경찰은 수사를 맡을텐데 서로 업무를 떠넘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영용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회장은 "개정법대로라면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올 경우 경찰, 공무원은 상대방에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 나올 것"이라며 "경찰, 공무원, 아보전까지 한 곳에 모여 조사, 수사, 보호·분리, 행정지원, 사례관리 등 모든 아동학대 업무를 한 트랙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 역시 "아동학대 해결은 경찰만의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며 "피해자 보호기관, 상담, 복지지원 지자체, 종합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종=박경담 기자·기성훈 기자·최민지 기자


아이도, 신고한 어른도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학대

20여 년 전 종합병원에 근무할 때 응급실에 한 남매가 실려왔다. 엄마는 "같이 죽으려고 약을 먹였다"고 했다. 오랫동안 배를 곯은 것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구사일생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보내는데 영 걱정이 됐다. 또 엄마가 아이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것 같아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신고 사흘 후 조사하러 병원에 나온 경찰들은 의사에게 '역고소'를 들먹였다. 가해 부모는 "약을 먹인 게 아니라 아이들이 알아서 집어먹은 것"이라고 말을 바꿨고, 허위 신고로 고소한다며 길길이 날뛴다고 했다. 부모의 일관된 진술 때문인지 학대 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사건을 신고했던 소아과 의사 A씨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에선 가해자들이 신고자를 집요하게 찾아내 항의하는 일이 똑같이 일어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머니투데이



1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현행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0조2항)은 어린이집이나 유·초·중·고교 교사, 의사 등 24개 직군의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를 지정하고 있다. 신고의무자가 아동학대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실제 조사과정에서 신고자 신변이 노출되는 등 고발을 위축하게 하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전북 순창에서는 자신이 진료한 아동의 학대 의심사례를 신고한 공보의가 가해 부모에게 협박성 발언을 들어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일도 벌어졌다. 해당 건을 신고한 의사 B 씨는 "신고 후 한 시간 후부터 5번이나 연달아 전화를 받았다"며 "가해 부모는 '네가 뭔데 아이 꿀밤 좀 때린 것 가지고 신고를 하느냐'며 욕설이 섞인 협박성 발언을 이어갔다"고 기억했다.

B씨의 신원을 알린 건 가해 부모를 조사한 경찰이었다. B 씨는 "가해자가 '신고자가 누구냐'고 캐묻자 조사 경찰이 '병원'이라고 알려준 게 첫번째, 뒤이어 다른 경찰이 가해자를 달래며 '의사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라고 말한 게 두번째 노출이었다"고 했다. 결국 B씨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지난해 제자의 학대 정황을 신고한 초등교사 C씨도 협박성 발언에 시달렸다. 피해 아동의 친모와 함께 사는 동거인은 C 교사에게 메시지로 욕설을 퍼부었다. 스스로 "폭력전과가 있는 사람"이라며 물리력을 행사할 것처럼 굴기도 했다. C 교사는 "1년에 두어번 정도는 의심 정황을 보게 되는데 대부분 이런 항의를 받는다"며 "신고를 하면 할수록 신고자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은 더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신고자에 대한 가해자의 위협은 아동학대 신고 의지를 위축시키는 분위기와 직결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신고의무자에 의한 학대 신고 비율은 2015년 29.4%(4900건)에서 2019년 23%(8836건)으로 줄었다. 2017년 기준 미국(65.7%), 호주(77%) 등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미 신고자 누설에 대한 처벌이 법으로 명시돼 있는데도 이것이 시행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62조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자의 신분을 누설할 시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어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신고율이 20%대로 60%대인 미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며 "신고자 누설에 대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다보니 신고 의지도 위축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민지 기자


갈 곳 없는 정인이 구하려면… "통합 컨트롤타워를 세워라"

16개월 여아 학대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 아동학대 신고 시 즉시 수사 착수 등을 골자로 한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지만 해결 과제는 아직 산적해있다.

현장 인력·시설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해 부모와 피해 아동의 기계적 분리 등은 완전한 해답이 될 수 없다. 꾸준한 가해자 교육과 면밀한 사후 모니터링 등의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머니투데이



◇"학대 무혐의라도 지속적인 모니터링 필요"



1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아동재학대를 막으려면 가해자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강제 분리 조치가 내려지는 경우가 많지 않을뿐더러 분리가 되더라도 아이가 원가정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 아동학대 3만45건 중 원가정 보호를 유지하는 경우는 2만5206건(83.6%)이다. 분리 조치가 내려졌다가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온 건도 844건(2.8%)이나 된다.

현재는 분리기간 동안 학대 혐의가 있는 양육자는 교육을 받는다. 학대행위 지속 여부 등 경우에 따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이 사후관리를 맡고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양육 환경이 좋지 않아 방임으로 이어진 학대 사례의 경우에는 국가 지원이나 교육을 통한 개선 여지가 있다"며 "현재 처벌만 강조되고 있는데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교육과 교화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교육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더 부여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학대 사건이 발생한 뒤 법원의 수강명령 판결이 나지 않으면 가해 부모를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아보전 관계자는 "가정의 문을 열어야 학대 정황을 파악하고 학대 부모에 대한 교육을 시킬 수 있다"며 "가정에서 '당신이 뭔데'라고 나오면 지금도 집에 교육을 시도할 수조차 없다"고 설명했다.

분리된 피해 아동의 원가정 복귀 결정도 좀더 세심한 과정을 거쳐 이뤄져야 한다. 분리 아동은 일정 기간 이후 아보전이 가해자 모니터링 결과를 통해 원가정 복귀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아동의 의사에 따라 다시 가해 부모에게 돌아간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학대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이들이 정말 돌아가길 원하는지 면밀히 분석해 결론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대가 무혐의로 밝혀지더라도 해당 가정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하지만 16개월 여아 사망사건에서 보듯 가해자가 거짓으로 둘러대거나 증거가 없어 혐의를 밝히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정 교수는 "무혐의로 판단됐다고 해도 신고가 들어갔다는 건 분명 학대 징조가 있었던 것"이라며 "아보전 등 현장에서 1년 정도 신고 사례를 관리하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아무런 모니터링같은 사후 관리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해당 가정에 지원이 필요할 경우 관계기관에 연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학대 혐의가 없으면 사후관리 등 따로 개입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통합형 컨트롤타워' 필요…"관계기관 소통해 판단"



아동학대 사각지대가 계속 사라지지 않는 이유로 경찰, 아보전, 지자체 소속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등 담당자들 간의 소통 분절과 권한 중첩 문제도 꼽힌다. 학대 아동을 발견하면 대처와 사후 관리까지 일련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통합형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8년 발간한 아동보호체계 강화방안 연구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지방정부 내 아동보호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가 조사부터 사후관리까지 학대 신고 이후의 과정을 주도한다. 복지사는 보호서비스를 주관하는 지역당국에 아동이 신고되면 24시간 이내에 조치방향을 결정한다.

아동의 상태와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심층 진단을 통해 필요할 경우 아동보호협의회를 열고 전담보호조직을 구성한다. 전담보호조직은 보호절차를 진행한 뒤 3개월 이후 해당 사례의 위기 정도를 판정하고 위험성이 제거되지 않으면 다시 3개월 이후 재검토한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이번 16개월 여아 학대 사건 역시 아이를 구할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관계 기관이 해야 할 업무를 정확히 해내지 못한 것"이라며 "사건구성요건을 주로 따지는 경찰이 아동학대에 대한 배경지식은 미흡할 수 있기 때문에 아보전 등 전문가와의 소통이 필요했는데 놓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강주헌 기자

세종=박경담 기자 damdam@mt.co.kr, 기성훈 기자 ki0301@mt.co.kr, 최민지 기자 mj1@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