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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역사 속 명저를 찾아서] `동국세시기`-열두 달의 풍속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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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 풍속에 설날 아침에 일찍 제물을 사당에 진설하고 제사를 지낸다. 이것을 정조차례(正朝茶禮)라고 한다. 남녀 어린이들이 모두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것을 설빔이라 한다. 차례가 끝나면 집안 어른들과 나이 많은 분들을 찾아 새해 첫인사를 드린다. 이것을 세배라 한다. 세배 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이때 내는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

"멥쌀가루를 쳐서 떡판에 놓고 나무 자루가 달린 떡메로 무수히 찧은 다음 손으로 둥글리어 기다랗게 늘여 만든 것을 백병(白餠·흰떡)이라 한다. 이것을 얇게 돈같이 썰어 끓는 물에 쇠고기나 꿩고기, 후춧가루를 넣고 익히는데 이를 병탕(餠湯·떡국)이라 한다. …시장에서는 설음식으로 이것을 팔고 있다. 세속에 나이 먹는 것을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고 칭한다."

위 내용들은 19세기 학자 홍석모(洪錫謨·1781~1857)가 쓴 '동국세시기'의 1월 1일, 즉 새해에 대한 기록이다. 지금도 행해지는 풍속들이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유지되었음을 볼 수 있으며, 그만큼 전통의 힘이 큰 것을 확인하게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왕조 사회였던 만큼 오늘날과 다른 새해 풍속에 관한 내용들도 있다.

"의정대신인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대궐에 들어가 임금께 새해의 문안을 드리고 새해를 하례하는 전문(箋文)과 표리(表裏·옷감)를 올린 후에 정전의 뜰에서 조하(朝賀) 의식을 했다"는 기록에서는 궁궐 뜰 앞에서 왕과 신하가 신년 하례식을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홍석모는 본관은 풍산(豐山)으로, 1804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815년 음서로 관직에 나아가 과천현감, 남원부사 등을 지냈다. 조부는 정조 대의 학자 홍양호이며, 부친은 이조판서를 지낸 홍희준이었다. 사촌형인 홍경모가 남긴 '관암전서(冠巖全書)'는 19세기 궁중풍속을 상세히 담은 저술로 꼽히고 있다.

홍석모는 학문적 기반이 강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여 시문에 능하였고, 특히 우리 고유의 풍속과 문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849년(헌종 15)에 이자유(李子有)가 쓴 '동국세시기'의 서문에는 홍석모가 자신을 찾아와 한 권의 책을 내놓으며, "이것은 우리나라의 세시를 기록한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중국 북주 때의 세시기)' 이래 이런 책을 저술한 사람이 많으나 우리나라에는 아직껏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번에 우리나라의 토속적인 풍속을 하나하나 모아 기록했습니다"라고 하여, 무엇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풍속을 세시별로 정리한 책이 없어서 이 책을 저술했음을 기술하고 있다.

1월부터 12월까지 우리나라 1년 열두 달의 행사와 풍속을 23개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행사가 그달에 있으면서도 어느 일정한 날짜에 기록할 수 없는 것은 '월내(月內)'라 표기하고 있다. 1월의 월내 항목 기록 중에는 "설날부터 휴업하고 있던 시전들이 날짜를 잡아서 상점문을 여는데, 반드시 모충일(毛蟲日·털이 있는 짐승의 날)에 연다. 이것은 털이 있는 짐승들의 털이 많고 번성하는 뜻에서 장사가 번창하기를 바라는 뜻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세시기'를 명저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이자유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가까이는 서울로부터 멀리는 궁벽한 촌가까지 아주 비속한 일이라도 빠짐없이 모두 수록해 놓았다. 우리나라 풍속 밑에는 반드시 전기(傳記) 중에서 꼭 부합되는 것만을 널리 골라 그 유래와 출처를 고증해서 기록했다. 그리고 그 고증이 아주 정확하고 흡족해서 잘못된 것과 빠진 것을 모두 지적하여 실었다"는 점이다. 고증에 충실하고, 전거들을 모두 기록함으로써 시기적으로 풍속들의 유래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새해에는 전통적인 풍속과 절기별 음식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는 책 '동국세시기'를 가까이 두는 것은 어떨까? 달이 바뀔 때마다 우리 선조들은 어떤 풍속들을 즐겼고, 이것이 지금까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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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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