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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매경데스크] 내년 3월 대선이 두렵다.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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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민주주의 상징인 미국 의사당이 폭도들에 의해 점령된 광경은 세계 전역에 큰 충격을 던졌다.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훔친 폭도들. 하원의장 집무실 책상 위에 구둣발을 올린 모습까지…. NBA 최고 농구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는 이날 광경을 보고 "우리는 2개의 미국에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필자가 정작 충격을 받은 것은 불현듯 우리나라 여의도 국회의 모습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 4년간 펼쳐졌던 극단적인 편 가르기 정치, 그리고 대선 결과를 끝내 승복하지 못한 채 폭도로 돌변한 지지자들…. 마치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나라 정치판에 벌어질 모습을 미리 본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극렬 지지층'이 늘어나면서 정치 지형이 변하고 있다.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보다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아군과 적폐를 나누는 사람이 세상을 좌우하듯 더 크게 떠들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여야 유력 정치인들도 극렬 지지층의 눈치를 보느라 결이 다른 주장을 제대로 내놓지 못한다. 공수처에 찬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태섭 전 의원이 '배신자'로 낙인찍혀 더불어민주당을 떠난 것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사례다. 말로만 대화와 통합을 외칠 뿐, 실제로는 이런 극렬 지지층에 편승해 교묘하게 자신들 영역을 넓히려는 정치인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한국 정치판은 지금 이례적인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차기 대선이 불과 1년2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력 후보'가 등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선두권 후보들은 모두 20%대 엇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하며 여론조사 때마다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그나마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선 명함을 내밀 만한 대선 후보도 눈에 띄지 않는다.

대선을 1년 남짓 앞두고 유력 후보가 등장하지 않았던 판세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한 번도 없었다. 돌려 말하면 극심한 혼란은 이제부터다.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가 끝나면 대선판을 선점하기 위해 극도의 이전투구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일경제가 새해 초 여론조사를 실시해 보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으로 코로나19에 이어 정치 갈등이 2위를 차지했다. 코로나19라는 돌발 변수를 빼면 사실상 우리 국민들은 경기 침체나 집값 급등보다 정치 갈등을 더 큰 국가의 위험 요인으로 내다본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다를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박근혜정부 때 촉발된 탄핵정국 촛불시위, 검찰 개혁을 둘러싸고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었던 군중 집회까지. 수십만 명이 운집해 시위를 해도 우리 국민들은 질서 있게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면서 외국 언론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식 선동 정치가 극렬 지지층과 맞물린다면 우리나라도 내년 대선에서 그렇게 이성적이고 냉정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여의도 국회가 미국 의사당처럼 화염와 총성에 뒤덮이는 것을 막으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마음의 통합'이라는 감동적인 키워드를 제시한 만큼 등을 돌리고 멀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잘 어루만질 수 있는 상징적 조치들도 뒤따라야 한다. 남은 임기 동안 그거 하나만 잘 만들고 퇴임해도 후세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칭송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만 사는 게 아니다. 강남에 여러 채 아파트를 보유해 세금 폭탄을 맞는 사람들도, 태극기를 들고나와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도 모두 우리나라 국민이다.

[채수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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