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차인표'의 차인표…과거 영광 젖어살다 현실 직시하는 배역
여전한 27년 전 강풍호 이미지 "변화 시급하다고 생각, 달라지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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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차인표'에서 배우 차인표는 애완견을 데리고 등산한다. 아주머니들의 쏟아지는 관심. 그는 체면치레하느라 허세를 부리다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다. 인근의 폐교를 찾아가 샤워하는데 갑자기 건물이 무너져 압사 위기에 놓인다. 차인표는 안전신고센터에 전화하지 않는다. 매니저(조달환)를 부른다.
"제가 구조대 바로 부를 테니까." "미쳤어? 구조대를 왜 불러? 그냥 너만 와서 조용히 꺼내주면 된다잖아.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그깟 알몸 보여주는 게 뭐 어때서 그래요." "뭐 그깟? 네가 그러고도 배우 매니저야?"
"그렇다고 목숨보다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아까 말했잖니. 다친 데도 없다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 그냥 너만 와서 조용히 날 꺼내주면 된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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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는 과거의 영광에 젖어 사는 차인표가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코미디물이다. 붕괴하는 폐교는 영화·드라마 섭외가 끊긴 실제 차인표의 현재를 가리킨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배우로서 내리막을 걸었다. 작품보다 봉사활동·기부 등의 선행과 다정다감한 남편상으로 각인됐다. 그래서 여전히 27년 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의 강풍호로 기억된다. 색소폰을 멋지게 불고 검지를 좌우로 흔들던 젊은 시절 초상에 갇혀버렸다.
김동규 감독은 정형화된 이미지를 차인표가 탈피해야 할 종속적 개념으로 다룬다. 건물 잔해에 깔리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애써 외면한 참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차인표는 이를 표현하는 과정이 진실하고 철저한 자아비판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자기 희화화까지 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알리고 싶었다고. 그래서 특별 출연한 아내 신애라의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 "자기야, 이미지가 뭐가 중요해?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차인표의 진정성은 변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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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하기까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못마땅했다. 초상권을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정체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작은 세계를 만들었더라. 출연 제안을 완강히 거부했다. 마음을 바꾼 건 4년이 지난 뒤였다. 영화 속 차인표처럼 배우로서 삶이 크게 나아지지 않더라. 작품 제안조차 받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갔다. 주연 자리를 욕심낸 것이 아니었다. 작품을 고를 형편조차 되지 못했다. 변신이 시급하다고 생각했고, 이 영화를 통해 달라지고 싶었다."
-현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세계가 우려되지 않았나.
"영화 속 차인표는 김동규 감독의 해석이 담긴 배역이다. 실제 나라면 안전신고센터에 전화해 사고 현장을 빨리 빠져 나왔을 거다. 이밖에도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적잖게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사건건 간섭하면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될 테니까. 시종일관 코미디를 표방하고 대중과 공유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해 출연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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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강풍호로만 기억되는 설정이 뼈아프지 않았나.
"배우는 의도와 관계없이 특정 이미지가 덧씌워지게 마련이다. 내게는 강풍호가 그런 것 같다. 크게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정형화돼 표현의 폭을 좁혀버렸다. 다양한 배역을 능수능란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걸 해내는 배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 주어지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색다른 연기를 보여줄 여지가 그만큼 적은 셈이다."
-스스로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군에서 제대하고 10년 동안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그 뒤 예능 프로그램에 간간이 모습을 비추며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그 5~6년의 선택이 패착인 듯하다. 언제부턴가 작품 제의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연예인 부부라서 그런지 사적인 면들만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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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착화한 이미지로 긍정적인 효과도 누렸다고 생각하는데….
"동전의 양면이다. 그 덕에 대중에게 잊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더없이 감사드리지만, 이제는 나 자신에게 변화를 주고 싶다. 이 영화를 그런 의지의 발현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솔직히 연기하면서 구차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자기를 객관화해서 보지 못하는 성격이나 벌거벗은 상태로 샤워실에 갇히는 장면을 표현하는 스스로가 측은하게 느껴지더라. 찰리 채플린(1889~1977)의 말대로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버드맨(2014)'으로 정형화한 이미지에서 탈피한 마이클 키튼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을 텐데….
"다시 주연급으로 올라서는 것까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영화라는 공동 작업만큼 즐거운 일이 없더라. 소중한 경험을 많이 쌓으며 영화인들과 행복해지고 싶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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