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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수)

엄마가 되고 취미부터 포기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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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윤정인] 나는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핀셋을 사용하여 섬세하게 미니어처 집을 꾸미는 일도 좋아했다. 레고로 피겨를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십자수, 뜨개질, 코바늘뜨기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했다. 'DIY’라고 적힌 모든 것들을 수행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내가 대학원 시절 가진 취미 활동은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이 취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혼자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취미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취미
단순·무한 반복
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야근이 일상이고, 집에 들어와서는 씻고 논문 보기도 바빴던 시절, 운동하고 밥 제대로 챙겨 먹을 시간도 없던 그 시절, 온갖 스트레스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취미가 필요했다.

◇ 팍팍한 일상의 숨통 트이는 존재, '취미'였다

그렇게 선택한 취미 활동이 바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옆에서 함께 해줄 사람 하나 없어도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 나는 책 읽는 것도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대학원에 진학한 뒤, 책 보는 게 그렇게 귀찮았다.

종일 논문을 보는데, 굳이 책을 더 읽고 싶지가 않았달까… 그래서 뇌를 쓰지 않아도 될 법한 것들을 찾아 헤매었고, 단순 작업을 무한 반복할 수 있는 십자수나 뜨개질에 꽂혔었다.

베이비뉴스

손으로 만드는 모든 걸 좋아했고, 잘했다. 나의 일상에 숨통을 트여주는 것, 바로 취미였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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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취미를 갖기란 참 어렵다. '부캐’가 유행이고, 아인슈타인 역시 바이올린을 그렇게 잘 연주했다고 하고, 무엇보다 사람은 취미를 가져야 정신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양육자가 되는 순간 취미란 참 갖기 어려운 '사치'가 되는 듯하다.

건담 조립이 취미였던 신랑은 많은 건담이 아이의 손에 '아작’ 나는 참사를 만나야 했고, 운동을 시작해 봤지만, 운동할 때마다 아이가 들러붙는 바람에 그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골목길 걷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우리 애는 걷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모든 이동을 자가용으로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내가 만든 미니어처는 당연히, 아이가 박살냈고,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니 좋아하던 공포 영화 역시 못 보게 됐다. 나와 신랑이 좋아하던 게임엔 잔인한 장면이 많아 애가 잠들기 전엔 절대로 할 수 없는 게임이 됐다.

참 어렵다. 양육자의 삶이라는 게 말이다. 일방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가뜩이나 사소한 일상을 마음대로 누릴 수 없는 시절이라 그런지 더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소소한 내 취미를 하나하나 아이와 함께하려니, 그게 곧 '나’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작은 것조차 나를 위해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퍼진다. 아이는 늘 사랑스럽고, 대체로 내게 힘을 주는 존재인데, 내 존재가 아이만을 위해 국한되는 느낌. 이런 감정을 숨기려고, 아이를 안을 때마다 늘 이런 말을 한다.

"엄마 비타민 충전할 게. 땡그리가 엄마 '비타민’이야."

아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말이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노라고, 비록 지금은 나의 것들을 포기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내 다짐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지킬 것이고, 내가 포기하는 모든 것들이 너를 이렇게 안고 있는 것으로 다 충족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자 하는 내 다짐.

그래도 이 다짐은 꽤 효과가 좋다. 아이를 키우는 7년간 이 다짐은 내가 나를 양육자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아이의 말썽을 지켜보기 힘들었을 때도, 아이와 기 싸움을 할 때도, 나는 이 다짐을 되새기며 아이의 마음을 먼저 챙기려 노력하고 있다. 일단 나는 노력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누군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고.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엄마가 되기 위해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되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지만, 그래서 아는 것도 없고, 처음이라 그저 서툰 것투성이지만, 그래. 그래도 그럭저럭 흘러가고 그럭저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다.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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