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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위안부 배상 법원 판결에도… 정부는 뾰족수 없어 뒷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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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배상 해법 놓고 진퇴양난

“2015년 합의 흠결” 비판한 정부

“당시 합의가 공식 합의” 물러서

국내 日자산 강제집행 땐 ‘파국’

자발적 배상 외 사실상 대안 없어

“합의 비판 신중했어야” 지적 나와

13일 예정 2차 손배소 선고 연기

세계일보

1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모자와 목도리가 둘러져 있다. 13일 예정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소송 선고가 이날 미뤄졌다. 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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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를 두고 문재인정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한 법원 판결 이후 어떻게 대책을 마련할지 묘안이 없어서다. 일본 정부가 우리 법원의 재판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데다 판결 내용에 오히려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냉각 상태인 한·일관계를 개선하면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줄 뾰족한 수가 없는 셈이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5년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중대한 흠결이 있다”거나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던 정부가 정작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2015년 합의가 공식 합의”라고 한 발 뺀 것도 난감한 기류를 반영한다. 정부가 사실상 한·일 위안부 합의를 무효화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가 화를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는 지난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한 것이다.

13일 예정됐다가 추가 심리의 필요성 때문에 3월24일로 재판이 미뤄진 고 곽예남 할머니와 길원옥·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 상대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도 원고 승소 판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승소해도 일본 정부의 사과는커녕 배상금액을 받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주권 국가의 경우 다른 나라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제법상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을 내세워 소송에 불응해온 데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이 맺은 1965년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로 해결됐다고 강변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우리 법원의 판결에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즉각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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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한 지난 8일 할머니 측 소송대리인인 김강원 변호사가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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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할머니 등을 대리해 승소 판결을 받아낸 김강원 변호사도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개인적으로 할머니들이 아무리 안 돼도 1인당 1억원이 아니라 10억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배상금을 강제집행할 방법이 있는지) 더 연구해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 안팎에선 원고 측이 우리나라에 있는 일본 정부의 자산을 어렵게 찾는다 해도 압류할 수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라며 이 과정에서 한·일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가 사실상 일본 정부와 정치적·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을 피해 당사자와 법원에만 맡긴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외교부는 지난 8일 논평에서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2015년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한다”고 밝혔다.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판결이 나왔을 때 “역사 문제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임해 줄 것을 기대한다” 등 강경한 목소리를 냈던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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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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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정부가 법원의 배상명령과 관련해 마땅한 대처방안을 찾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일본 정부가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따라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을 활용하자니 해당 합의를 강하게 비판했던 것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서울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새로 들어선 정부가 이전 정부의 국가 간 합의 등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다”며 “그래도 양 국가 간 합의가 이뤄진 사항이라면 정부가 신중히 접근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일본학)는 “재판 결과를 갖고 일본과 협상해 결론을 도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2015년 합의를 잘 해석해 합의 이행과정에서 문제를 보완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아시아여성기금’ 전무이사를 지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양국 정부와 양국 국민이 찬성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가 말하는 것이 사죄라고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일본 정부 측이 낸 돈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한·일 양국이 2015년 합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수정·개선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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