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보고서.(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제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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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조선을 영구 식민지로 삼기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필두로 농업 이민정책을 실시했다. 전북 정읍시 화호리는 정책 초기 이주지로 선정되면서 다수의 일본인이 이주했고, 대규모 농장이 생겼다.
개간된 화호리의 많은 농지와 대지 소유권은 구마모토 리헤이 등 많은 일본인들에 이전됐다. 이런 과정에서 자영농이었던 토착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해방 후에는 구마모토 리헤이 농장 소속 의사였던 쌍천 이영춘 박사가 열악한 농촌 보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곳의 농장 시설물을 활용해 입원실과 내과 등 5과 진료과목을 갖춘 화호중앙병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문화재청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소장 유재은)는 이같은 일제강점기 농촌수탈과 해방 후 농촌 보건의 역사가 남아있는 정읍 화호리에서 실시한 학술조사 결과를 담은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6일 밝혔다.
이번에 발간한 보고서에는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을 중심으로 한 화호리의 조사연구 성과를 수록했다. 먼저 '인문환경 고찰'에서는 식민지 화호리의 일본인 지주들, 정읍 화호리의 식민지 기억과 경관을 살핀다.
'문헌자료 고찰'에서는 신문기사, 지도, 사진, 공문서 등을 통해 당시 화호리 역사와 인문지리를 고증했고, '현장조사'에서는 건축물 현황과 부재 수종조사, 식생조사, 석재 산지조사, 디지털 기록을 시도해 근현대 유형자산에 대한 종합적 조사·연구·기록 성과를 수록했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 성과를 더 쉽게 이해하고, 교육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화호리에 남아있는 적산가옥 6동과 해방 이후 공간변화 등을 디지털 영상자료로도 제작하기도 했다. 이 영상을 보고서에 정보무늬(QR코드)로 삽입해 스마트폰 등 휴대기기로 볼 수 있게 했다.
보고서는 국공립 도서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 배포되며, 문화재청과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누리집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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