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판 웹북으로 발간 'parkseobo.life'에 무료 공개
[서울=뉴시스]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책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
이 말은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이자 단색화 거장인 박서보 화백(89)의 명언이자 그가 천착해온 화두다.
지난 70여년 화업은 변한듯 안변한듯 스윽 변신해왔다. 그의 작품 연필로 낙서하듯 그려지다 거무튀튀하고 누리끼리하게 변했고, 빨간색 연두색 형광색으로 칠해졌고 안개속처럼 몽실몽실 스미듯 변주하며 새로움을 보여줬다.
화가로서 무거운 엉덩이가 힘이었다. 하루 10~14시간은 기본, 화판 앞에 앉아 그리기를 반복하며 멈추지 않고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앞에 가는 똥차 비키시오'라며 젊은 시절에도 미술계를 주름잡던 그는 팔순이 넘어서도 '단색화 대가'로 불리며 세계미술계를 사로잡으며 승승장구했다.
【서울=뉴시스】박서보 화백 대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8일부터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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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딸은 아버지인 그를 두고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인물과사상)라고 했다.
미술심리치료사로 활동하는 박 화백의 딸 박승숙(52)씨가 펴낸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책은 딸이 쓰는 화가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담아 눈길을 끈다.
딸은 아버지와 똑같다는 어머니의 말이 오해임을 증명하기 위해 아버지를 거울삼아 반대로만 살려고 애썼다고 고백했다.
"아버지의 딸인 것이 싫었고, 창피했고, 아버지와 관련된 일마다 무심했고, 어디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을 18일부터 9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묘법(描法)'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박서보 대규모 회고전으로, 1950년대 ‘원형질’ 부터 2000년대 ‘후기 묘법’, 2019년 신작까지 총 160여 점이 전시됐다.hyun@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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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남보다도 몰랐던 아버지의 삶과 예술을 처음으로 깊이 들여다보니, 그동안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이 이해되었다고 한다.
"첫 등록금을 받아 의기양양 서울에 올라간 재홍은 회현동에 사는 친척 아주머니 댁에 머물며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홍대 미술과는 용산구 효창동의 원효사에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인 백범 김구가 국가 재건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고자 건국실천원양성소를 설립했던 곳이다. 그가 암살되는 바람에 2년 만에 해체되고 홍익재단이 그 본부를 매입했다. 1949년 법학부, 문학부, 초급 대학부의 4년제 사립대학으로 인가를 받은 홍대는 조각가 윤효중이 문교부에 힘을 써서 문학부 내에 미술과를 설치하게 되었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를 제외하면 남자가 갈 수 있는 미술과는 서울대학교와 홍대 두 곳뿐이었다. 재홍은 1950년 홍대 문학부 미술과 2기 3명 중 1명으로 입학했다. 당시 이름을 날리던 청전 이상범과 고암 이응노 밑에서 그림을 배우는 것이 재홍은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p.39~40)
[서울=뉴시스] 박서보 묘법(연필) 20호중 최고가.(사진 왼쪽) 박서보, 묘법 4-76, 1976, 캔버스에 유채, 연필, 60.6×72.7cm, 낙찰가 1700만원, K옥션 2010.07.21. 2018 최고가, 묘법 No.65-81, 1981, 마포에 유채, 연필,60.6×72.7cm, 낙찰가: 2억원, K옥션 온라인 2018.08.29. 사진=(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제공. 2020.4.20 photo@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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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가 뿌듯해하고 애착하던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 즉 ‘주류에 맞서는 혁명가’, ‘거침없는 행동가’, ‘한국 현대미술의 리더’, ‘18시간씩 작업하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대작 작가’, ‘홍대 미대의 수장(首長)’ 등은 전쟁의 가난에서 지금의 한국으로 급성장하느라 어수선했던 이 사회가 허락하고 부추긴 박서보의 외관일 뿐이라고 전한다.
"서보는 대신 다른 작업에 몰두했다. 여전히 작업실에 매일 나와 책상에서 묘법을 디자인했다. 예전처럼 혼자 작업하면서 즉각적인 감에 따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전에 미리 전체 이미지를 그려보는 것이 필요했다. 승호가 컴퓨터로 만들어준 모눈종이를 판화공방으로 보내 4절보다 조금 더 큰 아르슈지에 석판으로 찍게 했다. 그런 다음 묘법의 구도와 형태와 명암을 상상하면서 그 위에 연필로 초벌 그림을 그렸다. 문방구에서 볼펜 지우는 화이트 용액을 사와 모눈종이의 선들을 지우며 물감 대신 썼다."(p.348)
【서울=뉴시스】박서보 화백, Photo By An, Ji S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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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는 개인적인 화가에서 동시대의 거장으로 성장하는지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그는 노쇠해졌지만 "그림은 수신과 치유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그 말의 뜻을 더욱 새기고 있다. 책에는 여전히 지칠 줄 모르는 노동자이자 수행자로 살아내고 있는 그의 일상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전해 화가의 삶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박서보는 “아무래도 살기 위해 다시 작업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며 다시 작업실에 있다. 구순을 바라보는 그의 머릿속은 하루 종일 작업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며, 창조 욕구로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박서보는 팔의 힘을 기르기 위해 캔버스를 직접 만들고 망치질을 한다. 집게로 캔버스 천을 잡아당긴 날이면 손은 어김없이 떨려서 들고 있는 수저로 저녁 테이블을 두드리는 드러머가 된다. 사실 아무도 그가 작품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필을 깎는 그의 떨리는 손에는 무기를 닦으며 전쟁터로 나갈 준비를 하는 노장의 비장함이 서려 있다."
이 책의 영문 번역판이 웹북 형태로 발간되어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됐다.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볼수도 있고 프리드(프린트)해서 가질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읽어 볼수 있게 주변에 알려주셨으면 합니다"라며 "'parkseobo.life' 주소를 치면 된다"고 알렸다. 딸에 대한 뿌듯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380쪽, 1만8000원.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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