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인 A씨는 매달 회사 사장 소유 별장 관리에 강제 동원된다. ‘야외활동’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하는 일은 사실상 별장 관리 업무다. A씨를 비롯한 회사 전체 직원들은 1박2일 동안 김장, 밭 매기 등 업무와 무관한 일에 강제로 동원된다. 별장 울타리 공사, 조명 교체, 나무 심기는 물론 세면대 수리와 비데 설치까지 직원들 몫이다. 저녁 식사도 제공하지 않아 직원들이 직접 준비해 먹어야 한다. A씨는 “사장은 과거 비슷한 일로 고용노동부에 신고당한 적도 있는데 신고 직후 잠깐 잠잠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사적인 일을 직원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는 건지 고민된다”고 하소연했다.
#2. B씨는 직장 상사의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에 퇴사를 고민 중이다. 상사는 차 안에서 B씨의 머리를 때리는가 하면 B씨가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 새끼”, “죽을래?”, “패버린다” 등 욕설과 폭언을 이어갔다. 정시에 퇴근했다는 이유로 전화를 걸어 “할 일이 없어 퇴근했냐? 그만두고 싶지? 그만두게 해줄게”라며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위 사례들은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선정한 ‘2020년 10대 갑질 대상’ 중 일부다. 직장갑질119는 올해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례 2849건 중 제보자의 신원이 확인되고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은 10건을 선정해 27일 발표했다. 수상 사례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 5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직장갑질’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직장갑질119는 수상 사례를 폭행, 모욕 등 유형별로 나누고 일부 분야에는 해당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이들의 실명을 붙였다. ‘잡무 지시’ 부문에는 ‘공관병 상대 갑질’로 논란이 된 박찬주 전 육군 대장 이름이, ‘폭행’ 부문에는 ‘갑질 폭행’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이름이 붙었다. A씨 사례는 박찬주상, B씨 사례는 양진호상에 각각 선정됐다. ‘물컵 갑질’ 사건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조현민 한진칼 전무 이름을 붙인 ‘원청 갑질’ 부문에는 시설관리 하청기업 직원을 대상으로 잡무를 시킨 공공기관 주무관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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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를 뽑는 ‘갑질대마왕상’은 성추행·임금체불·폭언·부당해고 등 10대 갑질행위를 모두 저지른 것으로 지목된 한 중소기업 사장에게 돌아갔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6개월간 무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업무시간 외 업무지시, 직원 부당해고, 여직원 추행과 성적 대상화 등을 일삼아 직원들의 원성을 샀다. 이밖에 폐쇄회로(CC)TV로 직원들을 감시한 병원 원장 부부는 ‘훔쳐보상’에 선정됐고, 장난이라며 직원 엉덩이에 성기를 비빈 건설현장 반장은 ‘엽기대상’에 선정됐다.
직장갑질119는 “한국사회 직장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갑질들은 2020년에도 계속됐다”며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조항이 없어 직원들이 괴롭힘을 당하고도 신고할 곳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 범위를 넓혀 가해자가 사장의 친인척 혹은 아파트 입주민 등 사회 통념상 상당한 지위를 가진 ‘특수관계인’일 경우와 5인 미만 사업장도 규율해야 한다”며 “피해자 보호나 가해자 징계 등 조치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노동청 신고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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