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정세균 "허위조작정보 끝까지 추적해 엄벌" 지시
이 와중 美거쉬먼 회장은 "통일부가 인터뷰 왜곡"
UN보고관과도 진실 공방, 외교부는 CNN 오역
동남아도 접종하는데...文은 "백신개발국 先접종"
정경심 구속에 정치권 "가짜뉴스" 주장도 불신↑
사회분열 속 진영논리 기승이 원인...국민만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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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과 관련해 ‘가짜뉴스’를 끝까지 추적해 엄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방역을 훼방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선동 행위’를 행정력을 동원해 법으로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정부 역시 최근 사실관계를 왜곡한 발표를 잇따라 선보이면서 가짜뉴스 엄벌의 당위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심지어 해외 인사 발언들을 국정 철학에 맞춰 오용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경우까지 잇따르는 상황이다. 가짜뉴스 기승의 원인은 ‘일부 국민들의 일탈’이 아니라 ‘극심해진 사회 분열’ 그 자체이고, 이제는 정부조차 진영논리에 기대다가 오류를 양산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더욱이 언론이나 일반인은 정보 접근에 현저한 제한을 받지만, 정부는 대다수 정보를 취할 수 있어 뉴스 전파에 대한 책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일부 국민들’에 대한 ‘가짜뉴스 엄벌’ 기조는 현 정부 내내 강조해 온 사항인 만큼, 정부부터 투명하고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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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허위정보 끝까지 추적해 엄벌”... 백신 보도에도 반발
정세균 총리는 지난 21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3단계 상향은 마지막 카드가 돼야 한다며 불현듯 “허위조작정보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3단계 격상 확정’ ‘생필품 사재기 조짐’ ‘제주도 장례식장서 70명 확진자 발생’ 등 사실과 다른 허위조작정보가 최근 들어 빈번해지고 있다”며 “이러한 유포행위는 불신과 혼란을 조장하고 공동체의 방역역량을 저해하는 사회악에 해당한다”며 “정부는 허위조작정보 생산 및 유포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법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방송통신위원회와 경찰청 등에 “위법행위를 끝까지 추적해 엄벌하고 그 결과를 중대본에 보고해 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이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 아들인 문준용씨가 서울 회현동 금산갤러리에서 23일까지 작품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과 맞물려 더 주목을 받았다. 정부가 문씨의 전시회 기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방역을 강화할 것이라는 ‘음모론’이 유튜브나 온라인 공간에서 광범위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경고를 두고 전날 정 총리의 백신 관련 발언을 떠올리기도 했다. 정 총리는 20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해외 백신 도입이 늦어진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고 “백신 TF(태스크포스)가 가동될 때는 확진자 숫자가 100명 정도였다”며 “백신에 대한 의존도를 그렇게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측면이 하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정 총리가 ‘확진자가 적어 백신을 생각 못했다’고 시인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는데, 정 총리 측은 돌연 “그런 답변을 한 적은 전혀 없다”고 반발했다.
국무총리실은 21일 반박 자료를 내고 “‘여러 전문가들도 그 당시에는 코로나19 백신이 급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방역으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즉, 백신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국가들에서 사용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도입하자는 의견이 많이 존재했다’는 맥락으로 설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인터뷰 방송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국민들이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반박이었다. 실제 정 총리가 백신 관련 오판을 시인한 것으로 받아들여 “그래도 총리는 솔직하다”고 호평했던 상당수 시청자들은 총리실이 제시한 ‘설명서’에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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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민주주의재단 회장은 “통일부가 내 인터뷰 왜곡했다”
최근 정부가 가짜뉴스를 엄하게 다루겠다고 공언한 건 비단 최근 코로나19 방역 관련 사안뿐만이 아니다. 청와대나 각 부처들도 입증되지 않은 사실이 온라인상에 유포될 때마다 수차례 ‘가짜뉴스 법적조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3월 ‘정부가 북한에 마스크를 수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통일부가 즉각 “가짜뉴스 생산에 법적 대응를 하겠다”고 경고하고 해당 유튜브를 차단하도록 조치한 게 그 대표 사례다. 하지만 정작 통일부는 최근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해외 단체 인사의 발언을 ‘아전인수’ 격으로 왜곡해 거꾸로 망신을 당하는 일을 겪었다.
미국 국무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북한 인권단체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칼 거쉬먼 회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통일부가 대북전단 활동과 관련한 자신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잘못 사용했으며 이에 대해 실망했다”고 밝혔다. 통일부가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지난 15일 ‘표현의 자유 침해’ 등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비판들에 대한 설명자료를 배포하면서 “거쉬먼 회장도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고 알린 내용을 반박한 것이다.
실제로 거쉬먼 회장은 통일부의 주장과 달리 지난 6월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거쉬먼 회장은 당시 “대북전단이 위협이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다”며 탈북단체에 대한 통일부의 규제에 대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만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한반도 평화에 가장 중대한 위협은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과 핵무기 프로그램, 그리고 북한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정보를 차단하려는 북한 정권의 시도”라는 말도 했다.
거쉬먼 회장은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의 정당성을 주장한 서호 통일부 차관의 NK뉴스 기고문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정보의 확산을 범죄시하는 것은 오히려 반대 효과를 내 남북한 사이 분단의 벽을 강화할 수 있어 우려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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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정부 이해했다”더니 UN보고관과 공방, 외교부 CNN 오역도
통일부가 해외 인사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그 진의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30일에도 대북전단 살포 탈북자 단체들에 대한 설립 허가 취소 조치에 깊은 우려를 표시하며 경위를 설명할 것을 요구하는 토마스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이종주 통일부 인도협력국장 간 화상면담 결과를 보도자료로 알리면서 킨타나 보고관의 반응을 정부에 유리한 쪽으로 정리했다가 논란이 됐다.
당시 통일부는 킨타나 보고관이 이 국장의 설명을 듣고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게 됐다”며 ‘사의를 표명했다’는 내용을 특히 강조했다. 면담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없었던 국내 언론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국민들에게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킨타나 보고관은 8월12일(현지시간) RFA와의 인터뷰에서 이 국장과의 화상면담 결과를 거론하고 “나는 북한 인권 단체들에 대한 사무검사가 한국 정부의 정치적 결정이라고 본다”며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그는 당시 “통일부 관계자(서호 차관)에게 사무검사를 멈춰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등 국내 언론과 국민들이 몰랐던 사실도 털어놓았다.
킨타나 보고관은 이후에도 통일부 조치에 내내 반대하는 입장만 내놓았다. 급기야 이달 16일(현지시간)에는 한국 국회를 통과한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강하게 비판하며 “법을 시행하기 전 민주적 기관이 적절한 절차에 따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통일부는 17일 “균형 있게 보라”며 반박 입장을 냈다.
외교부 역시 해외 인사의 발언을 오역했다가 얼굴을 붉혔다. 외교부는 지난 16일(현지 시간) 진행된 강경화 장관의 CNN 인터뷰를 공식 유튜브 등에 올리면서 앵커인 크리스티안 아만푸어의 발언을 현 정부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곡해했다. 강 장관이 인터뷰에서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옹호하는 논리로 2014년 북한이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포를 발사한 사례를 들자 앵커는 “풍선에 고사포로 대응하다니 너무 지나쳤다”고 말했는데, 외교부는 “대북전단 살포나 북측의 발포 등의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고 번역해 자막을 달았다. 유명 CNN 앵커가 마치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지지한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외교부는 이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내용을 바로 수정하면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라며 의도적 왜곡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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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백신 개발국 先접종 불가피”... 安 “대통령이 가짜뉴스”
가짜뉴스 논란에 빠진 건 문 대통령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22일 박병석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정세균 국무총리,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코로나19 백신 논란을 거론하며 “(백신을 개발한) 그쪽 나라에서 먼저 접종되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라며 “그 밖의 나라들에서는 우리도 특별히 늦지 않게 국민들께 접종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믿고 있고,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당수 국민들은 이 발언에 의구심을 품었다. 화이자·모더나 등 현재 긴급 승인을 받아 접종을 시작한 백신을 개발한 나라는 사실상 미국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사우디아라비아·말레이시아 등 미국산 백신을 확보해 연내 접종을 개시·예고한 30여 개국은 대부분 백신 개발국과 거리가 멀었다.
신상진 국민의힘 코로나19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누가 미국·영국보다 먼저 접종해달라고 주장하는가”라며 “12월 또는 1월 내 접종 예정 국가들인 싱가포르·일본·호주·캐나다·멕시코·칠레 등의 나라는 화이자나 모더나가 자국 제약사가 아닌데 어떻게 빨리 선구매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지적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백신을 개발한 나라들이 먼저 접종할 수밖에 없다는 가짜뉴스를 대통령이 나서서 퍼뜨리지 마시라”며 “지금 접종하고 있는 캐나다나 이스라엘이 백신 개발국이냐”고 따져 물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같은 날 “‘백신의 정치화’를 중단해 달라”며 공개한 내용도 공방거리가 됐다. 강 대변인은 올 4월9일부터 12월8일까지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물량 확보에 대해 문 대통령이 13번 지시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지난달 30일 참모회의에서는 아예 “과하다고 할 정도로 물량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9월 이전까지 해외 백신 확보와 관련한 구체적 지시를 내린 적은 없다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이 그때까지만 해도 국산 치료제·백신 개발 가능성에 더 관심을 쏟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는 일찌감치 기술 부족을 자인하고 해외 백신 확보로 돌아선 일본·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와는 구분되는 움직임이었다. 만약 청와대 주장이 맞더라도, 참모들이 모두 문 대통령 지시를 수개월 간 이행하지 않은 게 돼 이 역시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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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구속에 불신 더 증폭... 진영논리가 가짜뉴스 더 부채질
정부의 대국민·대언론 경고와 정치권발(發 )가짜뉴스 논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1심 징역형 선고와 법정 구속으로 더 증폭됐다. 특히 진위 논란이 1년 넘게 이어진 입시비리 혐의가 모조리 유죄로 선고되면서 그간 일관되게 “모조리 가짜뉴스”라던 여권의 주장은 한순간에 코너로 몰렸다. 편을 갈라 감정을 소모하던 국민들도 정 교수의 완패에 양측 모두 크게 놀랐다. 조 전 장관 가족 사건은 지금까지 진행되는 문 대통령,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의 출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2부(임정엽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정 교수에게 징역 4년에 벌금 5억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1억4,000만원의 추징금도 부과했다. 재판부는 입시비리 혐의와 관련해서는 정 교수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 사모펀드 의혹과 증거인멸에 대해서는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과감해진 범행 방법에 비춰볼 때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우리 사회가 입시 시스템에 갖고 있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게 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해 비난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질타했다. 조 전 장관은 아내가 구속된 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너무나도 큰 충격”이라며 “내가 장관에 지명되면서 이런 시련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됐나 보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 측은 재판 초반부터 모든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이는 정보와 뉴스의 홍수 속에 사는 국민들 입장에서 누구의 말을 가짜뉴스로 흘려야 하는지 더 혼란스럽게 하는 또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사회가 극심하게 분열된 상황에서는 정부의 뉴스든, 언론의 뉴스든, 유튜버·블로거의 뉴스든 결국 진영논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커지기 마련인데 혹시 이를 서로 가짜뉴스라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국민을 통합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와 정치권까지 편승해서 말이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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