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시름만큼 쌓여가는 빚…“방역 협조하지만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
“우리가 총알받이냐” 청원까지 등장…24일 기준 16만7000여 명 동의 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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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이관우 기자]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54)씨에게 올겨울은 유독 바람이 매섭다 못해 얼음장 같다.
추운 날씨에도 매년 이맘때면 김씨 식당은 고기 한 점에 술잔을 비우는 손님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고 한다. 그는 삼삼오오 모인 단체 손님들이 회식을 마치며 “잘 먹었어요 사장님”, “메리크리스마스” 등의 따듯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따뜻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올겨울, 성탄절 전날 김씨 식당의 풍경은 찬 바람만 휘날리는 ‘개점폐업’ 상태다.
김씨에게는 이런 현실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는 “‘외식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힘든 업종이다’는 주변 만류에도, 맛있게 먹어주고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는 손님들이 있어서 지금껏 포기하지 않았다”면서도 “그런데 초유의 코로나 사태에 사실상 요식업계를 봉쇄하는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까지, 정부의 핀셋방역 피해는 고스란히 업주의 몫”이라고 전했다.
연말 대목이 사라진 건 다른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유흥시설이 몰려 있는 광주 상무지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박모(34)씨는 망연자실한 상태에 빠졌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적용된 방역 강화조치에 매출이 사실상 마이너스(-)로 회생불능 상태에 이르렀고, 임대료와 인건비 등 부담은 고스란히 빚으로 쌓이고 있다.
그는 “영업시간 단축으로 이미 밤 장사를 못 하고 있어 피해가 막심한데,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니는 건 문 닫으라는 소리”며 “어떻게 보면 가혹할 정도로 방역대책이 자영업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단 한번도 비협조적으로 가게를 운영한 적이 없다. 그런데 현실은 자영업자가 망하던 말든 각자 도생하라는 식”이라고 토로했다.
24일 0시부터 전국 식당에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연말 특수라는 좁쌀 같은 희망마저 사라진 요식업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연말연시 특별방역 강화대책은 내년 1월 3일 자정까지 적용된다. 전국 식당에서 5인 이상 예약을 받거나, 5인 이상 일행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예컨대 8명이 4명씩 다른 테이블에 앉는 것도 안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운영자에는 300만 원 이하, 이용자에는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5인 이상이 모이는 사적 모임을 취소해 줄 것을 강력히 권고하며, 이는 ‘4명까지 모이면 안전하거나 괜찮다’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매출이 바닥을 치고 있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 23일 공개한 한국신용데이터 소상공인 매출 자료에 따르면 지난주(12월 14~20일) 전국 소상공인, 자영업자 사업장 평균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68% 수준에 그쳤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7일 ‘왜 자영업자만 총알받이가 되어야 하냐’는 청원이 올라와, 이날 기준 16만 7000여 명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앞두고 폐업 기로에 서 있다는 반증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광주시는 지난 23일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지역 내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판국에 일회성 자금 지원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는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인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면서 “민생경제 상황을 주시하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다각적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한 요식업 종사자는 “정부와 지자체가 자영업자를 위해 각종 지원금을 지원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본다”며 “이러한 임시방편으로 향후 몇 개월은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는 이상 결국 빚만 산더미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호남취재본부 이관우 기자 kwlee71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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