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원고'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 "식민지배에서 독립 준비한 뚜렷한 증거물"
효의왕후 김씨가 '만석군석분'과 '곽자의열전' 필사한 한글 어필도 보물로
말모이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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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을 지킨 국민적 노력의 결실이 보물로 관리된다. '말모이 원고'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다. 문화재청은 각각 보물 제2085호와 제2086호로 지정했다고 22일 전했다.
'말모이 원고'는 학술·고전 간행단체 조선광문회가 주관하고, 주시경·김두봉·이규영·권덕규 등이 집필한 최초의 한글 사전 원고다. 제목인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 즉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한글로 민족의 얼을 살리고 주권을 회복하고자 편찬됐다. 원고 집필은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진행됐다. 여러 권으로 구성됐다고 추정되나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한 권만 전해진다.
구성은 크게 '알기', '본문', '찾기', '자획 찾기' 네 부분으로 나뉜다. '알기'에는 범례에 해당하는 여섯 사항을 표시하고 괄호 안에 품사를 제시했다. 뜻풀이는 한글과 국한문을 혼용해 서술했다. '찾기'에는 색인 본문의 올림말을 한글 자모순으로 배열했다. '자획 찾기'는 본문에 수록된 한자 획수에 따라 낱말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아울러 한자어와 외래어를 구분하기 위해 각각 앞에 '+'와 '×'을 붙였다.
말모이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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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특징은 특별 제작된 원고지 형태의 판식(板式·책을 쓰거나 인쇄한 면의 테두리 또는 짜임새)이다. 체계적인 설명이 한눈에 보일 수 있게 했다. 고서(古書)의 판심제(版心題·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를 본 따 그 안에 '말모이'라는 서명을 새기고, 원고지 아래위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된 다양한 정보를 안내했다. 첫 단어, 마지막 단어, 모음,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표기 등이다.
문화재청 측은 "현존하는 근대국어사 자료 가운데 유일하게 사전 출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최종 원고"라며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사전편찬 역량을 보여준다"고 했다. "우리말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의미가 크다"고 평했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한글학회 전신인 조선어학회에서 1929년부터 1942년까지 작성한 사전 원고의 필사본 교정지 열네 권이다. 한글학회(8권)와 독립기념관(5권), 편찬원으로 참여한 고(故) 김민수 고려대 교수의 유족(1권)이 나눠 소장한다. 집필·수정·교열한 학자 다수의 손때가 묻어 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됐으나 1945년 9월 8일 경성역(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그 덕에 1957년 '큰 사전' 여섯 권이 완성됐다.
조선말 큰 사전 원고 범례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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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철자법, 맞춤법, 표준어 등 우리말 통일사업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전 국민의 우리말 사랑과 민족독립의 염원도 담겨 있다. 사전편찬 사업에 사회운동가, 종교인, 교육자, 어문학자, 출판인, 자본가 등 108명이 참여했다. 영친왕이 후원금 1000원(현 기준 약 958만원)을 기부하고, 각지 민초들이 지역별 사투리와 우리말 자료를 모아 학회로 보내오는 등 계층·신분을 뛰어넘는 범국민적 움직임으로 발전했다.
문화재청 측은 "식민지배 상황에서 독립을 준비한 뚜렷한 증거물이자 언어생활의 변천을 알려주는 생생한 자료"라며 "국어의 정립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체계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실체"라고 평했다. "한국문화사와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대표성과 상징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조선어학회의 한글사전 편찬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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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보물 지정에는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곽자의전'도 포함됐다. 효의왕후 김씨가 1794년 한서(漢書)의 '만석군석분(萬石君石奮)'과 신당서(新唐書)의 '곽자의열전(郭子儀列傳)'을 필사한 한글 어필(御筆·왕과 왕비의 글씨)이다. 번역은 조카 김종선이 담당했다.
'만석군전'은 한나라 경제(景帝) 때 벼슬한 석분(石糞)의 일대기다. 평소 사람들을 공격하고 예의를 지켰으며, 자식들을 잘 교육해 아들 네 명이 모두 높은 관직에 올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곽자의전'은 안녹산 난을 진압하고 토번(티베트)을 치는 데 공을 세워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졌다는 당나라 무장 곽자의(郭子儀)의 일대기를 가리킨다. 곽자의는 조선에 곽분양(郭汾陽)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노년에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을 상징하곤 했다.
효의왕후는 발문에 두 자료를 필사한 배경에 대해 "충성스럽고 질박하며 도타움(충박질후·忠樸質厚)은 만석군을 배우고, 근신하고 물러나며 사양함(근신퇴양·謹愼退讓)은 곽자의와 같으니, 우리 가문에 대대손손 귀감(본보기)으로 삼고자 한다"고 적었다. 문화재청 측은 "가문의 평안과 융성함을 기원한 왕후와 친정 식구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했다.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군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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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필은 '곤전어필(坤殿御筆)'이라 해서(楷書·글씨를 흘려 쓰지 아니하고 정자로 바르게 쓰는 한자 서체)로 쓰인 제목,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을 필사한 본문, 효의왕후 발문, 왕후의 사촌오빠 김기후(金基厚)의 발문 등으로 구성됐다. '전가보장(傳家寶藏·가문에 전해 소중하게 간직함)', '자손기영보장(子孫其永寶藏·자손들이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함)' 등의 문구를 새긴 여닫이 뚜껑의 오동나무 함에 보관됐다.
왕후 글씨가 보물로 지정되기는 2010년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보물 제1627호)'에 이어 두 번째다. 문화재청 측은 "왕족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한글 필사가 유행한 18세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한글 흘림체의 범본(範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제되고 수준 높은 서풍(書風)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왕후가 역사서 내용을 필사하고 발문을 남긴 사례가 극히 드물어 희소성이 크다"면서 "제작 시기와 배경, 서예가 등이 분명해 조선 한글서예사의 기준작으로 삼을 만하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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