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이 오히려 부럽고, 김지영의 남편이 더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신간 ‘페미니즘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의 필자 중 한 명인 김소연 변호사가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던진 ‘해석’이다.
김 변호사는 “1981년생인 내가 봐도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82년생 김철수나 62년생 김숙희나 72년생 김경애도 다들 힘들고 외롭고 어렵다”고 했다.
그는 여성이 직장에서 성공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아이 양육에도 성공하며 살림도 잘하고 싶은 건 욕심일 뿐이라며 “스스로 괴롭다면 한 두 가지 정도는 포기하면 될 일이다. 이는 그냥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현실적인 ‘김지영’의 문제로 접근했다.
그러면서 “사회인으로 살면서 자신이 선택한 삶에 따르는 여러 책임과 불편함을 모두 제거해달라고 사회에 요구할 수는 없다”며 “이 당연함을 왜 유독 ‘82년생 김지영’에게는 따로 설명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김지영이 부럽다고 했다. 그 무엇이 됐든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 그는 “대부분의 워킹맘들은 삶의 기로에서 자신을 위한 선택 자체가 불가능한 사항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다”며 “반대로 남성들이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고 싶어도 사회 분위기상 이를 실천에 옮기기가 녹록치 않다는 점에서 여성보다 선택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 같은 ‘김지영’이 호응을 얻은 배경으로 기득권 페미니스트들의 ‘모순적 가치’를 들이민다.
서구에서 2017년부터 유행한 슬로건 ‘걸스캔두애니씽’(Girls can do anything,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은 여성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말인데, 586세대 중심의 한국 여성운동은 자신들은 뭐든 할 수 있지만, 나머지 여성들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여전히 피해자 또는 약자라고 본다는 것이다.
이는 곧 ‘약자는 선(善)’이라는 ‘언더 도그마’(under dogma)에 빠져 여성은 약자로서 권리만 있고 의무가 없는 특이한 존재로 명명됐다고 김 변호사는 진단한다.
김 변호사는 특히 대전시의원 시절, 지역 여성단체들이 친족 내 성폭력에 시달리는 많은 아동들을 이해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이런 종류의 사건은 사회적으로 이슈파이팅을 유발해 예산과 공직을 얻어내는 일에 별로 유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K페미니즘은 정치투쟁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사회구성원들에게 피해의식을 주입하고 여성 스스로를 피해자로서 정체화하는 K페미니즘의 패악질은 이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공저자 중 한 명인 인터넷 담론공간 ‘제3의길’의 나연준 편집인은 정의연 사태를 꺼낸다. 지난 5월 7일 이용수씨 폭로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정의연을 1990년 11월 36개 여성단체들이 설립한 정대협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그 과정과 목적을 살폈다.
나 편집인은 “이 시점을 전후해 한국의 페미니스트 운동은 민족주의라는 거대한 방패를 얻게 되고 이를 주도한 여성계 인사들은 여성운동을 커리어 삼아 꾸준히 정계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정치권과의 끈끈한 내부거래도 잊지 않는다. 그는 “급기야 똑같은 성폭력도 상대편이 저질렀을 때는 피해자의 감정과 증언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지만, 같은 편이 저질렀을 때는 피해자를 일단 인정하지 않는 이상한 피해자 중심주의가 탄생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공저자인 오세라비 미래대안행동 여성위원장은 “페미니스트들이 남녀 대립 구도를 만들어 여성을 영구히 희생양으로 묶어두기를 바라고 있다”며 ‘아직도 페미니즘이 필요합니까’라고 묻는다.
그 물음은 반세기 전 유물인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로 영혼을 빼앗아 버린 직업 페미니스트들로 향한다.
오 위원장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은 ‘옷깃만 스쳐도 성추행 의혹’으로 한국 사회를 남녀갈등으로 몰아넣었다”며 “기득권 페미니스트들은 성 정치를 중심부에 두고 갖가지 성 규제를 하며 금지 리스트를 만든다. 2015년 하순 무렵부터 불어 닥친 페미니즘 운동이 낳은 남녀 갈등은 급기야 남녀 분리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페미니즘의 교리 역시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들은 가부장제의 희생이며 억압받는 존재고 남성은 지배자”라며 “언론계, 정치계, 문화계 그리고 교육계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사회적 약자, 남성은 사회적 강자라는 틀거지로 한국 사회를 진단한다”고 했다.
저자들은 페미니즘이 전방위적 대유행을 일으키는 지금의 현상을 팬데믹(pandemic)에 빗대 ‘페미데믹’(Femidemic)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여성주의라는 명분 때문에 쉽사리 비판의 영역으로 끌고 올 수 없었던 불편한 이야기들을 다뤘다”며 “우리는 어쩌면 이 사회를 점점 비대면과 무접촉이라는 단절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페미데믹’의 백신을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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