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정부는 모험자본 육성을 통해 벤처ㆍ중소기업 성장을 도모하고자 자본시장법을 개정했다. 사모펀드 활성화가 벤처산업 성장에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 셈이다. 당시 개정안은 △자산운용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하고 △최소자본금 60억 원에서 지난해 10억 원까지 하향 △일반 투자자의 사모펀드 투자금액을 최소 1억 원으로 낮추는 방향을 골자로 한다.
정부의 의도와 달리 자본시장법 완화는 운용사, 판매사, 금융당국 등이 지켜야 하는 최저한도의 규율로 취급돼 각종 금융사고의 배경이 됐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통상 사모펀드가 3~5년 주기로 청산하는 걸 고려하면 사모펀드 활성화 추진 후 지난해부터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각종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건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법안 개정 후 금융당국도 감시의 끈을 놓쳤다. 운용사, 수탁사, 판매사 간 상호 감시·감독할 의무가 사라져서다. 자본시장법 247조는 자산운용사의 운용이 법령·약관에 어긋나면 신탁사가 이를 확인하고 자산운용사에 시정을 요구하고, 감독 당국에 보고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특례 조항에서 사모펀드에 한해 이를 면제하기로 했다.
일례로 옵티머스자산운용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기로 했지만, 관련 문서를 위조해 장외기업 사모사채를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수탁사인 하나은행, 사무 수탁사인 예탁결제원은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지시에 따라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닌 사모사채를 그대로 사들였다. 상호 간 견제 역할을 잊고, 펀드 사기에 동조한 셈이다. 모피아로 엮인 판매사, 금감원의 부실 감독도 대규모 피해자 양산에 일조했다.
연이은 사모펀드 부실 사태는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다. 우선 시민단체들은 감독 역할을 소홀히 한 금융감독원에 대한 감사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옵티머스 운용의 문제를 인지했음에도 제때 검사하지 않았고, 오히려 검사과정에서 편의를 봐줬다는 근거에서다. 감사원은 공익감사청구서를 받아들여 금감원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정치권도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자본시장법 강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사모펀드 투자자 보호 및 제도개편을 위한 자본시장법’을 대표 발의했다. 사모펀드 운용에 대한 판매사ㆍ수탁사 감시 책임을 부여하고, 투자자에 대한 분기별 자산운용 보고서 제공, 사모펀드의 환매 연기ㆍ만기 연장 시 집합투자자 총회를 의무화하는 등 공모펀드 수준의 투자자 보호장치를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금융당국도 당장 규제 단계를 높였다. 자산운용사의 자기자본 미달 여부 판단 주기를 연 1회에서 월 1회로 늘리고, 6개월 유예기간 내 관련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등록을 말소하기로 했다. 판매사와 수탁사, 헤지펀드 전담 중개업자에게는 펀드 운용을 감시·관리할 책임을 부과했고 일반투자자의 최소 투자금도 1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높였다.
일각에서는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강조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면 금융사고를 일으킨 주체는 피해자에게 손실액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 범죄를 저질러서 얻는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크다면, 사전 예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제에서다. 집단소송제도 활성화를 통해 상대적 약자인 금융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금감원은 시장 전체 정화가 필요하다는 명분 아래 사모펀드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비상장기업이나 비유동성 자산에 투자한 사모펀드의 손실 가능성이 커진 상태이며, 앞으로도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거나 환매ㆍ상환연기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전문 사모 운용업계와 감독 당국은 비슷한 사례 재발을 막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시장의 다양한 위험을 관리하는 역량뿐 아니라 부정ㆍ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내부통제 및 이해상충 방지체계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자료=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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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이인아 기자(ljh@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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