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쪽샘 44호분서 바둑돌 200여점…"여성도 바둑 즐겼을 것 추정"
신장 150㎝ 내외 미성년 왕족 가능성도…비단벌레 금동장식도 출토
경주 쪽샘 44호분 무덤 주인 착장 장신구 일체 |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성도현 기자 = 신라 왕족과 귀족 고분이 밀집한 경북 경주 쪽샘지구의 44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신라 왕족 여성과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됐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지면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 덧널을 조성한 뒤 돌을 쌓아 올리는 고분 양식이다.
쪽샘지구 44호분 전경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진행한 44호분에 대한 정밀발굴조사 중 지난달 금동관을 비롯해 금드리개(1쌍), 금귀걸이(1쌍), 금·은 팔찌(12점)와 반지(10점), 은제 가슴걸이 등 장신구 일체,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장식 수십 점, 바둑돌 200여점, 돌절구와 공이, 도교에서 불로장생의 선약(仙藥)으로 인식하는 운모(雲母, 규산염 광물의 일종) 등을 한꺼번에 발굴했다고 7일 밝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심현철 연구원은 이날 온라인 화상 방식으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2007년에 처음 확인했을 때 수풀이 많이 우거져 있는 상태였고 전봇대도 있었다"며 "이것들을 제거하고 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2~3년간 준비 작업을 한 뒤 2014년 5월 발굴 허가를 받아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44호분은 봉분 지름이 동서 30.82m, 남북 23.12m로 신라 고분 가운데 중형급에 속한다. 하지만 무덤 보호를 위해 봉분 안쪽에 쌓은 돌무지인 적석부의 크기는 동서 19.02m, 남북 16.43m로 대형분들과 비슷하다.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
봉분은 중형급이지만 이 무덤의 주인은 신라 왕족 여성으로 추정됐다. 지금까지 금관이 출토된 고분들은 당시 왕으로 볼 수 있는 1등급 고분이고 이외에는 2~3등급 고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왕족 여성의 무덤으로 보이는 이번 고분은 1.5등급 정도라는 게 연구소 측 설명이다.
연구소는 "가슴걸이는 남색 유리구슬과 둥글납작한 장신구인 달개가 달린 금구슬, 은구슬을 네 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달았는데, 이런 형태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됐던 디자인이다"라고 설명했다.
어창선 학예연구관은 "장신구의 조합과 재질 등을 고려했을 때 무덤 주인은 왕족으로 추정되며, 은장식 작은 손칼이 나왔고 장신구의 크기가 작은 것으로 볼 때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출토 유물의 위치를 기준으로 피장자의 신장을 150㎝ 내외로 추정했다.
무덤 축조연대는 출토된 토기, 금귀걸이, 금팔찌의 형태가 금관총 출토 유물과 유사해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됐다.
심 연구원은 "장신구의 크기가 다른 고분에서 발견된 것보다 전반적으로 작아 미성년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된다"면서도 "인골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나이 등 구체적으로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비단벌레 금동장식 |
출토 유물 중에는 신라 고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적 없는 형태와 크기의 비단벌레 금동장식도 있다. 이 유물은 무덤 주인 머리맡의 부장품 상자가 있던 자리 상부에서 수십 점이 나왔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 가장자리를 금동판으로 고정해 제작했다. 크기는 가로 1.6㎝, 세로 3㎝, 두께 2㎜ 정도다.
어 연구관은 "비단벌레 장식은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계림로 14호 등 최상급 무덤에서만 출토돼 이번 피장자의 위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유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까지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비단벌레 장식이 모두 마구에 사용됐던 것으로 볼 때 이번 비단벌레 장식도 안장이나 말다래(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밑에 늘어뜨리는 판)에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돌절구와 공이 |
돌절구와 공이는 머리맡 부장품 상자가 있던 장소의 철솥 바로 옆에서 확인됐다. 화강암으로 만든 돌절구는 높이 13.5㎝, 폭 11.5㎝로, 바닥이 평평하고 세로로 긴 형태이며, 위쪽에 얕은 함몰부가 있다.
어 연구관은 "함몰부의 용량은 약 60㎖로 곡물을 빻는 용도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부장됐거나 약제를 만드는 데 사용한 약용 절구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심 연구원은 "돌절구 안에 안료나 약초 성분이 있을 것으로 보고 꼼꼼하게 분석하려고 했지만,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토된 바둑돌 |
바둑돌은 피장자 발치 아래에 부장된 토기들 사이에서 200여점이 모여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지름 1∼2㎝, 두께 0.5㎝ 내외이고, 지름 1.5㎝ 정도의 것이 가장 많다. 색깔은 크게 흑색, 백색, 회색이며, 자연석을 채취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신라시대 바둑돌은 황남대총 남분(243점), 천마총(350점), 금관총(200여점), 서봉총(2점) 등 최상위 계층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만 출토됐다.
연구소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효성왕(재위 737∼742)이 바둑을 뒀고, 신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내용 등이 있는데, 이번 바둑돌은 기록에 전하는 신라인들의 바둑 문화에 대한 실물 근거자료로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동안 바둑돌이 출토된 무덤의 피장자가 대부분 남성으로 추정돼 당시 바둑이 남자의 전유물로 이해됐지만, 이번 피장자가 왕족 여성으로 추정돼 바둑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료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심 연구원은 "학술적으로 정리된 내용이 아니지만, 여성도 충분히 바둑을 즐길 수 있었을 거라고 현시점에서 추정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44호분 발굴조사는 현재 매장주체부에서의 유물 노출까지 진행됐다. 그동안 무덤 둘레에 쌓는 돌인 호석(護石) 주변에서의 제사 흔적, 봉분 성토(흙쌓기)방식, 돌을 쌓아 올린 적석부 구조와 축조방식, 의례행위 등이 확인됐다.
연구소는 여성의 머리맡 부장궤(부장품 상자) 하부에 있는 수백 점의 유물을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다. 심 연구원은 "유물이 어떤 재질·종류인지 조사 기간을 상정할 때 현재 발굴 작업이 절반 이상 진행된 상태"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번 44호분 발굴조사에 대한 현장설명회를 이날 오후 4시 연구소 유튜브(www.youtube.com/channel/UCyvYCBA2aJFa8hIdIpur82Q)를 통해 실시간으로 진행한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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