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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존 레넌 40주기…비틀스 반세기 후 BTS의 '미국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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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 5월 15일 미국 CBS TV '스티븐 콜베어쇼'에서 비틀스를 연상케 하는 무대를 연출하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NBC/Scott Kowalchy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80년 12월 8일 밤 10시 50분, 비틀스의 리더였던 존 레넌은 아내 오노 요코(小野洋子)와 함께 미국 뉴욕의 맨해튼 자택에 들어가다가 정신질환자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쏜 총탄을 맞고 쓰러져 숨졌다. 그의 죽음과 함께 1960년대를 풍미한 비틀스 신화와 전설은 막을 내렸고, 멤버 4명의 재결합 무대를 손꼽아 기다리던 팬들의 간절한 기대도 무너졌다.

당시 25살의 채프먼은 살해 동기를 묻자 "존 레넌은 '비틀스야말로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고 말했다. 레넌은 종교와 신을 믿지 않는 가짜 평화주의자다. 노래 'Imagine'에서는 천국이 없다고 말하고 돈도 갖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수백만 달러짜리 집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위선자다. 그래서 내가 신의 이름으로 처단했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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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꾸며진 존 레넌 추모 공간 '스트로베리 필즈'에는 레넌의 대표곡 'Imagine'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다. 2010년 12월 8일 레넌 30주기를 맞아 한 아이가 꽃을 바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레넌은 1940년 10월 9일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올해는 그의 탄생 80주년이자 사망 40주기다. 1957년 3월 자신이 나온 중학교 이름을 딴 스쿨밴드 '쿼리멘'(Quarrymen)을 결성하자 두 살 아래인 폴 매카트니와 세 살 적은 조지 해리슨이 1957년 7월과 1958년 3월 각각 합류했다.

그룹명은 '레인보스'(Rainbows), '문독스'(Moondogs) 등으로 공연 때마다 바뀌다가 1960년 '비틀스'(Beatles)란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딱정벌레'(Beetle)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고, '비트'(Beat) 음악을 추구해 지었다는 해석도 있다. 레넌의 라이벌 매카트니의 탈퇴로 활동을 중단한 것은 1970년 4월이다. 올해는 비틀스 결성 60주년이자 해체 50주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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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가 대중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고자 2006년 9월 영국이 발매한 기념우표. 맨 앞은 1963년 발매한 앨범 'With the Beatles'의 재킷을 토대로 도안한 것이다. 왼쪽부터 존 레넌, 조지 해리슨,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연합뉴스 자료사진]



비틀스는 리버풀 캐번클럽을 주무대로 공연을 펼치며 인기를 얻었다. 독일 함부르크로 연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으나 영국 지방도시의 무명 밴드일 뿐이었다. 1961년 11월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전속 매니저로 맞아들여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엡스타인은 1962년 5월 EMI 자회사 팔로폰과 음반 계약을 한 뒤 녹음 직전 레넌과 동갑내기인 새 드러머 링고 스타를 영입했다. 비로소 4명의 라인업이 완성된 것이다.

시작은 미미했다. 1962년 10월 5일 발표한 데뷔 싱글앨범 'Love Me Do'는 영국 음반 판매 집계에서 17위에 그쳤다. 그러나 1963년 1월 발매한 두 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부터 세 번째 'From Me To You', 네 번째 'I Wanna Hold Your Hand'까지 내리 1위를 차지하며 '비틀스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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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마지막 앨범 'Abbey Road'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2019년 9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에서 'Abbey Road' 재킷으로 장식한 버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원래 재킷 사진은 영국 런던 북부의 한 횡단보도에서 촬영된 것으로 할리우드와 오스트리아 빈 거리에도 재현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계 최대의 팝 시장 미국에 진출한 것은 1964년이었다. 2월 첫 주에 전미 히트 차트 1위에 오르더니 4월 4일 자 빌보드 차트에서는 랭킹 1∼5위를 휩쓸었다. 비틀스의 노래들은 1964년 한 해에만 18주 동안 전미 차트 1위를 독점하고 미국 싱글 레코드 판매의 60%를 차지했다. 8월부터는 30여 일 동안 미국 전역을 돌며 23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1965년 8월 15일에는 뉴욕 메츠 야구장에 5만5천 명을 모아놓고 대규모 공연을 펼쳤다. 언론은 비틀스의 미국 상륙을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고 불렀다.

비틀스는 마지막으로 녹음해 1969년 9월 발매한 앨범 'Abbey Road'와 이전에 녹음했다가 해체 한 달 뒤 선보인 'Let It Be'에 이르기까지 정규 앨범 12장에 211곡을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10억 장 이상, 미국에서만 1억7천만 장 이상의 음반을 팔아치웠다. 빌보드 차트 1위 싱글은 모두 20곡으로 역대 최고 기록이며, 유일하게 활동 기간 해마다 빌보드 1위를 차지한 진기록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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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가 2012년 7월 27일 열린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불멸의 히트곡 'Hey Jude'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Can't Buy Me Love', 'A Hard Day's Night', 'Help!', 'Yesterday', 'Penny Lane', 'All You Need Is Love', 'Hey Jude', 'Come Together', 'Something' 등 비틀스의 주옥같은 명곡들은 지금도 영화·드라마·광고 등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으며, 각국 가수들에 의해 불리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주인공도 비틀스였다.

비틀스 멤버들은 해체 이후에도 인기를 이어갔다. 매카트니가 9곡, 해리슨이 3곡, 레넌과 스타가 각각 2곡 등 16곡을 빌보드 차트 맨 위에 올려놓았다. 멤버들이 모두 빌보드 1위를 차지한 그룹은 비틀스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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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이 2020년 1월 26일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시상자로 나서고 공연도 펼쳤다. 시상식이 열리기 직전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의 남성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다이너마이트'로 제63회 그래미상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다. 국내 대중가수로는 처음이다. 지난달 빌보드 뮤직 어워즈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트로피를 각각 4년·3년 연속으로 거머쥔 이들이 내년 1월 31일 열릴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수상에 성공한다면 미국의 3대 대중음악상을 석권하는 셈이다.

BTS는 RM, 슈가, 진, 제이홉, 지민, 뷔, 정국 7명으로 구성돼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이 2010년 9월 2일 전국 오디션을 열어 뽑은 멤버들을 조련해 2013년 6월 13일 데뷔시켰다.

그룹명 방탄소년단은 '총알을 막아내는 것처럼 편견과 억압으로부터 10대와 20대를 막아내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방시혁이 탄생시킨 보이그룹'의 약어로 해석하기도 한다. 영어 BTS는 'Bangtan Sonyeondan'이나 'Bulletproof Boys'의 약자로 출발했지만, 2017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방탄소년단 공식 로고를 교체하면서 '순간마다 청춘의 장면들을 뛰어넘는다'는 의미의 'Beyond The Scene' 약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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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이 지난달 8월 21일 미국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 시상식에서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선보이고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BTS는 시작부터 창대했다. 데뷔곡 '2 COOL 4 SKOOL'과 첫 번째 미니 앨범'으로 각종 신인상을 차지한 데 이어 2014년과 2015년 각각 일본과 중국 시장에 진출했고, 2015년 말 미국 빌보드 차트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2018년에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상 처음으로 미니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를 '빌보드 200' 1위에 올려놓았다. 8월 21일 발표한 '다이너마이트'가 메인 싱글 차트인 '빌보드 핫 100' 수위를 차지한 것도 대한민국 최초의 기록이다.

기록만 놓고 보면 아직은 BTS가 '20세기 최고의 밴드'로 꼽히는 비틀스에게 턱없이 못 미친다. 그러나 비틀스는 미국과 같은 영어권인 영국 출신인데다 영국 문화는 미국 문화의 원류이기도 하다. BTS가 팝의 변방이던 한국 출신인 점을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도 비틀스의 '영국 침공'을 뛰어넘는 '문화적 대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비틀스 이후 롤링 스톤스, 엘튼 존, 딥 퍼플, 레드 제플린, 퀸 등 수많은 영국 팝가수가 미국에서 성공을 거뒀듯이 BTS의 뒤를 잇는 한류 스타가 쏟아져나오기를 기대한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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