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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우린 잘못한 게 없잖아요"…코로나 1호 정리해고자의 2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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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폭염 견디고 '연대'로 버틴 7개월

'부당해고 맞다' 판단에도 복직은 '아직'

[편집자주]아시아나항공의 하청업체인 케이오는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을 이유로 직원들에게 무기한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신청받았다. 휴직과 퇴직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 8명은 '정리해고'됐다. 해고된 이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싸우는 동안 계절은 봄에서 겨울로 바뀌었다. 200일의 시간이 흘렀고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해고자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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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1월 26일 김계월(57·여)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김밥을 쌌다. 김밥에 들어갈 달걀지단이 첫 장부터 부스러지지 않고 잘 부쳐졌다.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날은 계월이 직장에서 해고된 지 2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해고가 부당했는지를 판단 받기 위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심문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계월이 아침부터 김밥을 싸는 이유는 부당하게 해고된 자신들을 돕는 사람들의 마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고된 이후 여러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져 점심은 돈을 주고 사 먹을 수도 있었지만 계월은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단 몇 푼의 돈도 허투루 쓸 수가 없어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쌌다.

계월은 이날 해고 이후 처음으로 딸이 출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0여 일 동안 부당 해고를 알리는 출근길 선전전을 위해 오전 6시 전에 집을 나서왔지만, 이날은 오전 선전전이 없다 보니 딸의 응원도 들을 수 있었다. "엄마 잘하고 와"라고 말하는 딸과 인사를 나눈 계월은 도시락 삼아 싼 김밥을 챙겨 집을 나왔다.

지난 봄.

3월 24일 코로나19가 할퀴고 지나간 인천국제공항은 적막했다. 항공기들이 쉴 새 없이 활주로를 오르내리며 만들어 내던 소음도 이제는 드문드문 들려왔다. 계월은 회사가 요구하는 '무기한 무급휴직'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동료들에게도 이에 동의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해고가 두려웠던 직원들은 회사가 내민 동의서에 마지못해 서명을 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서명 마친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가자 계월은 혼자 남겨졌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 휴대전화를 들자 서러움에 눈물이 목소리와 함께 나왔다. 평소라면 울음소리를 가려줄 항공기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적막할 수 없었다." 계월은 8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회사의 무급휴직 강요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에 동의한 동료들을 비난할 수도 없었다. 직원들 모두가 해고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계속되는 불안한 상황에서 누구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살이 빠졌다고 했다.

회사 공고 며칠 뒤 희망퇴직을 신청한 한 직원은 정성스레 빨아온 작업복을 관리자에게 건네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다음에 불러줄 때는 이 작업복을 제게 주세요"하고 떠났다. 직원들은 '회사가 불러줄 날'에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희망은 연착륙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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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 News1 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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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렇게 공항을 떠났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청소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케이오'에 고용됐던 500여 명의 직원 중 필수 유지 인력 160명을 제외한 직원들이 희망퇴직을 하거나 무기한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그리고 희망퇴직에도 무급휴직에도 동의하지 않은 8명은 5월 11일 정리해고됐다. 계월은 이 해고자 8명 중 한 명이다. 사람들은 케이오를 '코로나19 1호 정리해고 사업장'이라고 불렀다.

5월 13일 계월은 마지막 출근길에 올랐다. '출입증'을 반납하라는 회사의 요구 때문이었다. 집에서 나와 열차를 탄 계월은 내내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6년을 넘게 반복한 출근길이었다. 전동차는 곧 영종대교에 몸을 올렸다. 영종도와 육지를 잇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는 열차가 지난한 세월을 달려온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계월은 생각했다.

계월의 캐비닛에는 6년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작업복, 신발, 장갑, 커피믹스, 볼펜, 파스, 핸드크림. 하나씩 채워놓았던 개인 소품들을 다시 꺼내어 비닐봉지와 쇼핑백에 나눠 남았다. 짐을 들고 나올 때 계월은 출근을 하던 동료와 마주쳤다. 힘내라며 회사 안으로 향하는 동료를 뒤고 하고 공항을 왔다. '당당하게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했지만 계월은 계속 눈물이 났다.

이튿날 정리 해고된 8명 중 6명은 원청인 아시아나항공의 본사 앞에 천막을 쳤다. 원천인 아시아나가 부당한 해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냈다. 케이오는 하청업체였지만 아시아나항공과 별개의 기업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케이오의 모기업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고 이 재단의 이사장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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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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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농성을 위해 쳤던 천막은 설치 나흘 만인 5월 18일 철거됐다. 오전 10시쯤 용역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종로구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관내 지역이 집회 금지 구역으로 설정돼 철거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계월과 해고자들은 천막 기둥을 잡고 버텼지만 순식간에 '들어내'졌다. 누군가 시간을 재보니 철거에 3분 48초가 걸렸다고 했다.

계월은 그래도 경찰이 함께 출동한 것을 보고 안심을 했다. 계월은 '경찰이 우리를 지켜주겠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용역 직원들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용역 직원들을 말리는 자신들을 뜯어냈다. 경찰과 용역 직원들을 해고자들을 한 명 한 명 들어서 천막에서 띄어놓던 그때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는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었다.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 '오월정신'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희망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며 만들어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계월은 뜯어지는 천막을 바라보며 누가 자신의 고통에 응답하고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농성장이 철거됐지만 해고자들은 어디에 가서 목소리를 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다시 천막을 쳤다. 천막을 치자 곧바로 다시 노란색 계고장이 붙었고 6월 16일, 6월 23일 농성장은 두 차례 더 철거됐다. 철거작업을 집행하는 용역 직원들에게 계월은 "너희는 해고를 당해봤냐"라고 외쳐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남은 건 쉬어버린 목과 온몸에 남은 멍 자국이었다.

계월이 느끼기에 자신들의 싸움은 '떼쓰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를 한다는 것은 절차에 맞지 않았다. 실제로 그랬다. 계월이 생각했던 것처럼 인천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7월 13일 회사의 해고 조치가 부당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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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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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부당 해고 판정이 나왔다고 전해졌을 때 해고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계월도 농성장을 함께 지킨 동지들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명치끝이 아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당연한' 결과였는데 '너무 다행이다'라는 기분이 드는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회사는 지노위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당 해고 판정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했다. 여름에도 싸움은 이렇게 이어졌다. 그 사이 '역대 최장 장마'가 농성장을 훑고 지나갔다. 종일 비옷을 뒤집어쓰고 지내야 하는 날이 계속됐다. 장마가 지나니 폭염이 농성장 천막을 뚫고 내려왔다. 등과 겨드랑이에 땀띠가 난 계월은 가려움에 몇 시간 쪽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8 월14일 계월과 해고자들은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으로 농성장을 옮겼다. 부당 해고 판정이 나왔으니 고용노동부가 나서 회사의 복직 이행을 지시해 줄 것을 요구할 목적이었다. 계월은 농성장으로 출근하며 농성 일자를 기록한 숫자표를 바꿔 끼웠다. 숫자는 세 자릿수를 앞두고 있었다.

가을, 그리고 지금 겨울.

판정 이후 한 달 뒤에 배송된 지노위 판정서에는 '이 사건 사용자는 이 판정서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이 사건 노동자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에 정상적으로 근로했다면 받을 수 있는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는 주문이 적혀 있었다.

지노위 판정으로 9월 11일부터 회사와 복직을 두고 교섭이 시작됐다. 회사는 해고자들에게 무급휴직에 동의를 하면 다시 복직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계월은 무급휴직에 반대해 해고된 자신들에게 다시 무급휴직에 동의하라는 제안을 하는 회사의 제안을 이해할 수 없어 교섭 도중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또 회사는 6명의 해고자 중 3명을 먼저 복직시키고 3명은 무급휴직을 하다가 추후에 복직시키겠다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추후'가 '언제'인지, 또 반드시 복직을 시킨다는 약속이 없었다. 일종의 갈라치기였다. 그동안 함께 싸워온 동료들을 두고 일부만 일터로 돌아간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기에 해고자들을 이를 거부했다.

세 차례 이어진 교섭은 무산됐고 그 사이 계절은 또다시 바뀌었다. 11월 20일 오후 8시 해고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금요 문화제'가 농성장 앞에서 열렸다. 이날 서울의 기온은 전날 대비 10도 이상 떨어지면 영하 언저리에 머물렀다. 날씨 때문인지 계월은 쪼그려 앉아서 청소를 하면서 아프기 시작한 무릎에 쑤시는 듯한 통증이 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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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계월은 자신들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 '연대'의 힘을 느꼈다. 농성장을 찾아와 주고 물품을 지원해 주는 개인, 단체들이 늘 있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면 절대 이 도움을 잊지 않고 자신도 같은 행동을 하겠다고 계월은 다짐했다.

자신보다 훨씬 이전에 해고돼 수년째 복직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선배 해고자'들을 보면서 세상의 부조리함이 너무도 바뀌지 않는 것 같아 세상에 더 분노하게 됐다.

11월 26일 중노위 심문은 1시간 30분여 만에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이날 부당 해고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중노위는 판단을 일주일 유보했다. 중노위는 일주일간의 화해 조정 기간을 노사에게 제시했다. 이 사이 화해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12월 3일 최종 판단을 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중노위 판정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회사가 이를 받아들이고 해고자들을 재고용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다시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월은 반드시 회사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꺾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무런 잘못도 안 했잖아요." 계월이 말한 '끝까지 싸워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해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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