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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슈 물가와 GDP

`담뱃세 인상=서민증세` 논란…술처럼 물가연동제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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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00원 인상, 2015년 2000원 인상'

정부가 10년 주기로 두 차례 담뱃값을 급격히 인상했을 당시 밝힌 주 목적은 흡연율 감소였다. 하지만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흡연율 감소효과는 미미했다. 보건복지부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15년 흡연율은 22.6%로 담뱃값 인상 전(2014년) 24.2%와 비교해 약 1.6%포인트 하락했고 ,이듬해 흡연율은 오히려 반등하며 2014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결국 정부는 국민건강증진을 명목삼아 세수 증대를 노렸다는 비난과 '서민증세'라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예측이 불가능한 담뱃세, 그 대안으로 물가연동제가 떠오르고 있다. 올 여름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담뱃세 물가연동제'가 담뱃세 대안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 술에 붙는 주세의 경우 이미 내년 3월부터 맥주와 탁주에 적용이 확정된'물가연동제'는 세율을 소비자물가 기준에 맞춰 주기적, 자동적으로 조정되도록 하는 과세 정책으로, 이를 담뱃세에 적용할 시 소비억제와 안정적인 세수 확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영국, 호주 등 영연방국가들은 이미 담뱃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해 안정적인 세수확보를 위한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영국은 1990년대 담뱃세를 지속 인상하는 '택스 에스컬레이터 (Tax escalator)' 정책을 도입했다가 세수 손실이 커지는 부작용을 겪었었다. 이는 급격히 오른 담뱃값으로 인해 흡연자들이 담배 밀수시장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2001년 물가연동제를 도입한 영국은 부작용의 결과였던 세수 손실률은 급격히 둔화되었으며, 성인 흡연율도 2000년 27%에서 2012년 19.3%, 2019년 13.9%로 유의미하게 감소하였다. 영국의 사례는 담뱃세 물가연동제가 안정화된 세수 확보를 견인하고, 담배의 실질 가격 하락을 방지하여 흡연율 감소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장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담배소비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하고 있다. 특히 호주는 매년 두 차례 물가에 연동하여 담배소비세율을 조정하고 있다.

최근 열린 한국정부회계학회 온라인 포럼에서는 경제학 전문가들이 담뱃세 물가연동제 전환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권일웅 교수는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한순구 교수와 진행한 '일반담배와 전자담배에 대한 차별적 물가연동형 종량세 도입이 판매량 및 조세수입에 미치는 영향' 연구를 인용하며 담배에 부과된 고정형 종량세 방식의 담뱃세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해 담배의 실질 가격을 하락시키고 있어, 담뱃세를 물가와 연동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권 교수는 '차별적 물가연동제'라는 새로운 개념의 차등 과세체계 도입을 제안했다. '담뱃세 차별적 물가연동제'란 위해성이 입증되고 가격에 비탄력적인 일반담배에는 물가 상승률에 1%포인트를 더한 값을 기준으로 과세하고, 가격에 보다 탄력적이고 위해성이 저감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에는 물가 상승률과 동일한 값을 적용하는 차등적 과세 방안이다.

권교수는 "차별적 물가연동제가 담배 판매량을 가장 크게 줄이고 제세부담금 수입은 가장 크게 증대시켜, 조세 목적인 '담배 소비 억제'와 '세수 확보' 효과를 동시에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년간 담뱃세 차별적 물가연동제를 도입한 경우 담배판매량이 9.7% 감소해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고, 담배 재세부담금 수입도 증가폭이 가장 큰 10.9%의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특히, 담뱃세를 단발적으로 인상한 경우보다 소비 억제, 세수 확보에 더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권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한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한순구 교수는 "담배에 물가연동형 종량세를 부과하는 방안은 담배의 실질 가격 하락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담뱃세의 단발적 인상으로 발생하는 정치적, 사회적 리스크도 완화할 수 있다"며 물가연동제로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8월 지방세학회 학술대회에서도 담뱃세 물가연동제가 논의되었다. 당시 '담배소비세 물가연동제 도입 검토'를 주제로 발표한 법무법인 율촌의 이강민 변호사는 "담배 관련 세금이 불규칙, 불연속적으로 인상된 까닭에 담뱃값과 담배 관련 세금 모두 계단식으로 단발적 인상해왔고, 이에 대해 10년 주기 단발성 인상은 그 때마다 조세저항, 물가인상, 사재기 현상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세정지원, 경기 부진으로 인한 세수 감소 문제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세법 개정을 통해 담뱃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하여 조세저항을 완화하고 세수를 증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2012년부터 담뱃세 물가연동제 추진, 국회 문턱 못 넘어

우리나라의 경우도 담뱃세 물가연동제는 2012년부터 국회와 정부 중심으로 꾸준히 추진되었으나 번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2년에는 이만우(새누리당) 의원이 담배소비세와 부담금의 현행 종량세율을 물가에 연동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과 '지방세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2014년에는 이한구(새누리당) 의원이 일반 담배 1갑(20개비)에 대한 담배 소비세를 인상하고, 매년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해 담배 소비세를 자동 인상하는 방안을 담은 지방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지난 20대 국회때도 윤한홍(자유한국당) 의원이 담배에 부과되는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건강증진부담금, 부가가치세를 종전 수준으로 환원하고, 개별소비세는 폐지, 그리고 물가연동제를 도입해 담배의 실질가격 하락을 방지하는 보완 장치도 마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모두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정부도 물가연동제 도입에 의지를 갖고 추진한 바 있다. 2014년 담뱃세 2000원 인상 논의 당시 기획재정부는 담배 실질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을 방지하고 가격의 금연효과가 장기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 정부 입법으로 검토했었다. 당시 유근혁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담뱃세 물가연동제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고,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담배소비세 등에 물가연동제를 적용하는 입법예고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물가연동제는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했고 담뱃세 2000원 인상만 통과되면서 2015년 1월 담뱃값이 인상되었다.

주세(맥주, 탁주) 내년 3월 물가연동제 시행, 담뱃세도 함께 고려되어야

우리나라도 주세법 개정으로 종량제가 우선 도입되는 맥주와 탁주에 대해서는 내년 3월부터 매년 물가상승률에 비례하여 세율을 조정하는 물가연동형 종량세가 적용된다. 국세청은 물가 상승에 따라 오른 가격만큼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종가세가 적용되는 주류(소주 등)와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물가연동제를 도입했다.

담뱃세 물가연동제가 적용되면 정부 입장에서는 급격한 담뱃세 인상으로 인한 서민증세, 우회증세 등의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담뱃세 인상을 위해 매번 담배제세금 관련 주요 법안들을 모두 개정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한순구 교수는 지난 9월 한국정부회계학회 온라인 포럼에서 "주세(탁주와 맥주)에 대해서는 이미 물가연동형 종량세가 도입이 확정되어 내년 3월부터 시행 예정이므로, 담뱃세 물가연동형 종량세 도입도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담뱃세 물가연동제를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 학계 등에서의 낙관적 전망은 적지 않다. 담뱃세가 인상된 지 벌써 6년이 지났고 학계를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가 시작되었으니, 앞으로 가격인상에 대한 논의는 보다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여진다.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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