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중성 문지 폐쇄 양상.(문화재청 제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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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고려 시대 몽골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수도를 강화로 천도한 이후 건립한 '강화중성'에서 문지(문이 있던 자리)가 최초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소장 유재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소재 강화중성에서 문지를 최초로 확인했다고 4일 밝혔다.
강화중성은 남한 지역에 유일하게 남은 고려 시대 도성유적으로 '고려사' 등 문헌기록에 따르면 1250년(고려 고종 37년)에 축조됐고, 둘레가 2960칸이며 17개의 크고 작은 성문이 있었다. 수도 강화를 '⊂' 형태로 둘러싼 토성으로, 현재 확인된 길이는 총 11.39㎞이다.
강화중성의 문지는 너비 4.4m, 길이 5.3m로이며 내측에 성문을 외측에 보도시설을 설치했다. 성문은 긴사각형(장방형)의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4개의 기둥을 세워 시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 외곽에는 넓적하고 편평한 돌을 경사지게 깔아 보도를 조성했다. 문지 주변에서는 용두를 비롯한 장식기와와 평기와, 장식철물, 철못 등 문과 지붕 부재로 추정되는 유물도 다량 출토됐다.
문지는 조사 당시 석축담장으로 막혀있는 상태로 확인됐다. 이는 성문 폐기 직후 담장을 쌓아 문지를 폐쇄한 양상으로 보인다. 1259년 몽골과의 화의에 따라 외성과 내성을 훼철(헐어서 치워버림)했을 때 중성도 같이 파괴됐거나, 1270년 개경으로 환도했던 당시에 중성이 폐기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성벽의 축조방법도 새롭게 확인됐다. 그간 강화중성은 판축해 쌓은 토루를 중심으로 안과 밖에 흙을 덧대어 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조사구역의 성벽은 판축 토루만으로 구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성벽은 석축기단을 쌓고 나무기둥(영정주)을 세운 다음 판재를 결구해 틀을 만들고 성질이 다른 흙을 여러 겹 다져 쌓아 너비 4.1~4.4m, 높이 2.5m 내외로 완성했다.
성벽 윗면에는 나무기둥이 세워진 지점을 따라 석렬을 1열씩 시설했으며, 성벽 안쪽에는 너비 4.4m, 길이 3.5m 규모의 적석시설(돌을 쌓아만든 시설)을 축조했는데, 이곳은 성 안쪽에서 성벽 사면을 따라 위로 오를 수 있는 등성시설로 추정된다.
이번 조사는 2019년에 이은 제2차 조사로, 강화중성의 서성벽 구간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지역은 남산(해발 223m)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으로, 강화도성 서쪽에서 능선을 따라 도성의 중심부인 현 강화읍 관청리 일대로 진입할 수 있는 교통로에 해당한다.
강화중성 제2차 발굴조사 성과는 4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에서 온라인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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