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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양당은 긴장하기 바랍니다." "금기를 깨는 말씀을 많이 드리려 한다."
최근 진보 정당인 정의당에서 나온 목소리다. 새 사령탑이 된 김종철 대표가 각각 지난달 9일 당대표 수락연설과 13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서 한 말. 양당에는 경고, 정의당에는 각오였다. 그리고 이후 그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무엇이 정의당을 주목하게 했을까.
진보 정당은 이전부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국회의원을 다수 배출하며 원내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건 민주노동당부터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 등장했다. 권영길 전 당대표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2002년 대선에서는 100만표에 가까운 득표를 했다.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면서 명실상부 원내 진보 정당의 위상을 갖췄다.
그러나 북핵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 2007년 대선 결과에 대한 실망(3% 득표), 그리고 노선 갈등까지 겹치면서 당내 대립의 골이 깊어졌다. 결국 2008년 2월 쪼개진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나뉜 것. 진보신당은 고 노회찬 전 의원과 심상정 현 정의당 의원이 주도했다.
분열 속에서도 통합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어졌다. 2011년 12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탈당파(새진보통합연대), 그리고 국민참여당이 합쳐져 통합진보당이 탄생한다. 그리고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3석을 얻어 진보정당 역사상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한다.
그러나 곧바로 갈등 속으로 들어갔다. 비례후보 선출 과정을 놓고 부정 논란이 불거진 것. 극한 대립 속에 혁신을 주장한 인사들이 탈당을 했고, 이들은 2012년 10월 진보정의당을 창당한다. 이후 2013년 7월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꿨고 지금에 이른다. 통합진보당은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됐다.
분열과 통합을 반복한 진보 정당은 이제 원내정당 기준으로 정의당(6석)과 기본소득당(1석)이 있다. 그중에서도 중심은 정의당. 현재 원내 정당 가운데 가장 오래 당명을 유지하고 있다. 정의당은 그간 '민주당의 왼쪽'에 자리하면서 노회찬과 심상정이란 유명 정치인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와 올해를 거치면서 어려움에 빠졌다.
지난해 민주당과 선거법·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연대를 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선거법을 관철했다. 정의당은 비례대표 의석 약진을 기대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총선에서 거대 양당 모두 비례대표용 정당을 만들었고, 정의당은 6석 유지에 그쳤다.
그에 앞서 지난해 가을 '조국 정국' 당시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 '정의당답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총선 이후 잇따라 불거진 여당 관련 이슈에서도 역시 같은 지적을 받았다. '민주당 2중대'란 표현은 정의당이 처한 위기를 한마디로 압축한다. 그런데 요즘 정의당이 이런 위기를 넘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변화의 시작점은 세대교체였다. 심 전 대표가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당대표에서 조기 사퇴했다. 10월에 김종철 대표가 취임했다. 1970년생으로, 원내 정당 대표 중 가장 젊다. 9월 취임한 강은미 원내대표도 1970년생이다. 또 최근 국감에서 주목받은 류호정 의원(비례대표)은 20대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지난해 말 이른바 97세대(90년대 학번· 70년대생) 세대교체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불발됐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70년대생 차기 주자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아직은 미지수다. 이런 측면에선 정의당이 앞선 셈.
그간 정의당은 노회찬과 심상정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세대교체를 통해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출신'의 변화도 있다. 김 대표의 경우 학생운동 경험은 있지만 진보 정당의 주류인 노동운동 출신은 아니다.
당이 주장하는 정책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금기를 깨는 정책이다. 김 대표는 취임 이후 두 가지를 반복해 강조했다. 공무원연금·사학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통합하고, 고소득층은 물론 저소득층도 세금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것. 연금개혁과 보편적 증세다. 민주당도 망설였던 이슈이고, 어찌보면 보수적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본자산제나 전 국민 고용보험 실시 등 진보 색깔이 강한 정책도 주장하고 있지만 과거 진보 정당에서는 금기로 통하는 정책 주장을 함께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전제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노동개혁을 거론한 것도 변화다. 김 대표는 얼마 전에는 민주노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연금개혁과 조세개혁을 말했다. 김 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의당의 정책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효용이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달라진 또 다른 점은 '민주당 2중대'란 오명을 떨쳐내려는 움직임이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귀책 사유'가 있는 민주당이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고 했고 민주당이 그 방향으로 가자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도 못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보궐선거에 정의당이 후보를 내 완주할 거라는 점도 강조한다. 또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라임·옵티머스 특검', 즉 민주당이 완강히 거부하는 특검에 여지를 남겨둔 것도 있다.
그렇지만 변화의 한쪽에는 과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 당 지지율이다. 5% 전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단지 '민주당의 왼쪽'에 머물지 않고 새롭게 목표로 설정한 '진보적 대중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표의 확장이 필요하다. 문제는 국민들이 정의당을 집권 가능한 정당으로 보느냐는 것이다.
그간 정의당의 모습은 논평 정당, 평론 정당이었다. 국민의 눈에는 여야 거대 정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공직 부적격 인물을 판별한다고 해서 붙은 '데스노트'란 별명도 결국에는 논평 정당이라는 의미다. 아직 대중이 생각하는 '대안정당'의 범주에 들어갔다고는 할 수 없다.
다른 과제는 '정의당에는 노회찬, 심상정밖에 없느냐'는 소리를 들어왔다는 거다. 두 인물은 당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스타급 정치인이 당의 목소리를 키우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이들을 대체하거나 뛰어넘는 인물이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 보니 정의당에는 인물 자체가 많지 않다는 인식이 생겼다. 현실적으로도 두 인물을 제외하고는 다선 의원이 없었고 지역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도 드물다. 특히 노 전 의원이 고인이 된 뒤로 심 전 대표로 더욱 쏠렸다. 따라서 정의당에는 제2 노회찬, 제2 심상정 등장에 대한 갈증이 있다.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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