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서울·부산 공천으로 심판받는 것이 책임있는 도리"
김종인 "당헌 당규상 약속을 파기한 것"
김종철 "당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고 유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 노사대표자 간담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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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 여부와 당헌(黨憲) 개정을 위한 전(全) 당원 투표를 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중대한 잘못을 저지를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라고 하여 성추행 의혹을 받아 스스로 사퇴하는 등 공석이 된 서울·부산 시장에 후보자를 낼 수 없다.
그러나 민주당은 전 당원 투표로 후보자 추천 여부를 묻는 등 사실상 공천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당 헌법인 당헌을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당장 야권에서는 '약속 파기'라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온택트 정책의원총회에서 "오전 최고위원회의의 동의를 얻어 후보 추천의 길을 열 수 있는 당헌 개정 여부를 전 당원 투표를 부쳐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성추행 혐의로 수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자진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소속된 민주당은 이 규정에 따라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
이에 이 대표는 "당헌에 따르면 두 곳 보궐선거에 저희 당은 후보를 내기 어렵다. 그에 대해 오래 당 안팎의 의견을 폭넓게 들었다"면서 "그 결과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 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며 오히려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런 규정을 도입한 순수한 의도와 달리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유권자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들었다"면서 "저희 당 소속 시장의 잘못으로 시정의 공백을 초래하고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데 대해 서울·부산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거듭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어 "특히 피해 여성께 마음을 다해 사과를 드린다. 보궐선거 후보를 낼지 당원 여러분께 여쭙게 된 데 대해서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민주당 스스로 부족함을 깊게 성찰해 책임있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9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한국탄소융합기술원에서 탄소 소재 제품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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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사실상 당헌을 뒤집는 모양새를 보이자 야권에서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당헌 당규상 약속을 파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 당원 투표를 해 봤자 결론은 뻔하다"며 "온갖 비양심적인 일을 다 하는데, 천벌이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도 "민주당이 지도부가 문제를 책임지기보다 당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고 유감"이라고 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국민의 삶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불설성"이라며 "집권 여당의 통 큰 책임정치를 기대한 국민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엇갈린 의견이 나온다. 민주당 입장 그대로 전 당원 투표를 거쳐 후보를 내는 것에 대한 의견을 구해 일종의 심판을 받는 게 합리적이라는 견해와 당헌을 스스로 뒤집는 정당은 후보를 낼 당위성을 잃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30대 회사원 김 모 씨는 "민주당이 당원 투표를 통해 후보자 추천 여부에 대한 의견을 구한다고 하니, 이 절차를 통해 결론을 내면 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논란에 대해 민주당에서도 충분한 사과를 했으니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면 민주당의 이런 행위는 오히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다는 지적도 있다. 40대 직장인 박 모 씨는 "당헌을 부정하는 모습도 그렇고 전 당원 투표로 후보를 낼 것에 대한 결론을 낸다고 하면 아무래도 반대보다는 찬성이 많지 않겠나, 야당에서 서울시장이 나오기보다 자신이 속해 있는 정당에서 후보가 나오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일종의 민주적 절차를 갖추는 모양으로 보이지만, 그냥 절차를 위한 절차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당은 31일과 다음 달 1일 이틀간 전 당원 투표를 할 예정이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내년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여러 고심이 있었지만, 공당이나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번 전 당원 투표는 후보를 내기 위해 당헌 개정이 필요한지에 대한 당원들의 의지를 확인하는 절차"라고 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이번 주말에 있을 전당원투표에 많은 당원이 참여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주시길 바란다"며 "(당 지도부는) 후보를 내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것이 더 책임 정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란 판단을 했다"고 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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