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장은 분명하다. 의료 정책에 반대해 국가시험을 거부하자 응시 신청 기한을 한 차례 연장까지 해줬는데도 끝내 시험을 거부한 의대생들에게 재응시 기회를 주려면 적어도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사 국시뿐만 아니라 국가가 주관하는 여러 국가시험과의 공정성, 형평성 문제도 있어 재응시 기회를 줄 것인지는 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뜻이다. 의대생들이 국시를 거부하다 재응시하려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사정이 있고, 국민 대다수가 납득할만하다고 받아들인다는 동의가 있어야 재응시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이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는 와중에 공공의료 정책 반대를 빌미로 젊은 의사들의 집단휴진도 모자라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이 시험을 거부한 것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의료계와 국민의 역량을 코로나 방역에 쏟아야 하는 시점에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계 이해에 민감한 정책을 성급히 추진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응시 신청서 접수기한을 연장하면서까지 시험을 보라고 했는데 거부하고 다시 시험을 보겠다면 적어도 진정 어린 사과 정도는 해야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는가. 정부가 재응시 기회를 주는 묵언의 조건으로 '국민의 동의'를 거론하는 속마음에도 그런 기대가 깔려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이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슨 사과를 하느냐'고 생각한다면 국민들의 눈에는 오만한 '엘리트 주의'로 비쳐질 것이 분명하다.
의협과 범의료계투쟁위원회(범투위)가 최후통첩 경고 때 말했던 특단의 조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의협과 범투위가 29일까지 내부 논의를 거쳐 대응 방향을 결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의협 대변인은 범투위 차원에서 교수와 전공의 등 여러 직역의 의견을 종합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의견을 들어 내부 입장을 정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국민들은 집단휴진이나 파업 등 극한의 집단행동을 더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기를 바란다. 의대생들의 국시 재응시 기회를 박탈하고 1년을 유급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정부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의사 국시 응시대상 3천172명 가운데 2천726명이 시험을 거부한 상태다. 재응시 기회를 끝내 주지 않으면 의료기관 운영의 핵심 인력인 인턴이나 레지던트 등 전공의 수련 과정에 공급되는 의료서비스 인력이 그만큼 줄어 의료시스템 전반에 엄청난 부하가 걸리게 된다. 시험을 거부한 의대생들이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이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이런 구조적 '뒷배'가 있어서일 것이다. 국민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이런 힘만 믿고 기 싸움을 이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 시험을 거부했던 의대생들이 직접 사과하고 정부는 국민을 설득해 동의를 구한 뒤 재응시 기회를 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의료계가 논의할 것은 '특단의 조처'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하는 '상생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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