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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삶과 문화] 가을 아침상에 가지밥과 달래장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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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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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식사로 가지밥을 준비했다. 텃밭 가지 세 개를 뭉텅뭉텅 잘라 간장에 볶은 다음 불린 쌀과 함께 밥솥에 안친다. 가지밥에는 양념장이 중요하다. 대개 텃밭에서 부추를 끊어오지만 오늘은 특별히 달래장을 만들었다. 달래 한 움큼을 다듬어 송송 썬 다음, 다진 마늘, 매실청, 고춧가루, 간장, 통깨, 그리고 참깨 한 방울과 섞어 비벼 먹으면 입 안 가득, 때 아닌 봄 향기가 파도를 친다.

들에서 캐는 달래, 노지 달래는 장에서 파는 것보다 잘고 손도 많이 간다. 잡풀과 낙엽이 어지러운 들판에서 호미로 듬뿍 캐낸 뒤 대충 털어 담은 것들이다. 당연히 이물질과 흙이 잔뜩 엉겨 붙었다. 지난해만 해도 개천에 내려가 살살 흔들어 씻어낸 다음 집에 가져왔지만 올해는 그대로 봉지에 담았다. 씻어서 보관하면 금세 무른다고 누군가에게 들었기 때문인데 이것도 다 귀가 얇은 탓이다.

밥솥에 쌀을 안친 후 난 양념장을 만들 분량만큼 달래를 덜어와 물에 담갔다. 몇 번 씻어낸 다음엔 하나하나 집어 꼼꼼하게 이물질, 뿌리껍질, 흙을 떼어낸다. 달래를 다듬는 일은 늘 하세월이다. 예전에는 그게 무서워 못 본 척 지나치기도 했으나 지금은 마음을 바꿨다. 노지달래가 재배달래보다 맛과 향이 뛰어나 포기도 쉽지 않지만 사실 달래를 다듬지 않는다고 달리 특별한 일을 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먹기 위한 노동과 절차가 너무 많고 복잡하다가 아니라 자연이 선물하는 먹거리를 다듬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자 의미가 된 것이다. 난 늘 그런 식이다.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일은 나 몰라라 하고 기껏 들나물이나 다듬고 있으니 말이다. 시쳇말로 '뭣이 중헌디' 격이다.

다들 달래를 좋아한다지만, 달래가 봄이 아니라 가을에도 올라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봄나물 대부분이 새로이 들판을 장식한다. 냉이, 전호, 씀바귀… 가을 나물은 살짝 데쳐 냉동해두면 채소가 귀한 겨울에 훌륭한 식재료가 되어 준다. 그 바람에 이맘때면 아내와 나는 다시 봄이라도 맞은 듯 따사로운 햇살과 산들바람, 한창 때의 국화 향을 즐기며 나물 채집 놀이에 흠뻑 빠지고 만다. 행복은 이렇게 온몸으로 부딪쳐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가을나물이 봄나물보다 맛과 향이 못하다는 소문은 거짓말이다. 우리가 잘못 아는 것은 또 있다. 계곡에 피거나 아파트 화단에 심어 놓은 꽃이 산철쭉이고 오히려 산에 사는 철쭉이 철쭉이듯, 우리가 들에서 캐고 시장에서 사먹는 달래는 산달래가 진짜 이름이다. 달래는 정작 산에 올라야 만날 수 있다.

도시를 떠나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자연이 빚어내는 식재료는 계절의 호흡을 알아야 내 것이 된다. 3월, 냉이, 쑥, 전호를 시작으로 돌나물, 영아자, 두릅, 다래순, 홑잎나물… 텃밭 농사를 시작하기도 전, 자연은 우리를 위해 미리 먹을 것을 준비해 두건만, 이제 호박, 오이 등 텃밭을 거두는 시점이 되자 또 이렇게 아낌없이 자신의 몫을 나눠준다. 가난하면서도 하늘의 도를 지키는 삶을 안빈낙도라 한다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도 게으른 자의 합리화이거나 너희는 가난에 만족하며 살라는, 가진 자들의 감언이설에 불구하다. 자본에 빼앗기지 않는다면 들판의 삶은 가난할 수가 없다. 자연은 가난이 아니라 부지런한 자의 것이다. 우리는 마음만 너무 바쁘다.

한국일보

조영학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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