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2014년 5월 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입원한 후 6년 동안 병상에서 장기 투병하다 향년 78세로 눈을 감았다.
유족으로 부인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유족은 4일간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삼성그룹은 이날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했다.
이건희 회장은 일제강점기이던 1942년 1월 9일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시 중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첫째 형인 이맹희, 둘째 형인 이창희 대신 1987년 삼성그룹을 물려받았다.
그룹 회장으로 올라서기 이전 이건희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해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1980년 중앙일보사 이사를 거쳤다.
이건희 회장의 행보는 1993년 이른바 '신경영'으로 주목받았다. 현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와 휴대폰 사업의 큰 성과를 이끌어내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 관리 지식보다 새로운 기술에 관한 관심이 컸다는 점, 만화와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대중문화에 관한 관심이 컸다는 점, 일본식 경영과 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점 등도 생전 그의 특징으로 기억된다.
'7시 출근-4시 퇴근' 등의 새로운 출퇴근제 지시, 이른바 '천재어록', 군사문화를 방불케 하는 신입사원 교육 등의 인사관리도 뉴스거리를 낳았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어두운 그림자도 그룹에 남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리한 무노조 경영 고수와 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관련 의혹이다. 아울러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노동자의 연이은 사망, 정경유착 의혹 등에도 휘말렸다.
이건희 회장은 선대 이병철 전 회장이 이른바 '원칙'으로 주장한 무노조 경영 방식을 답습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를 결성하려는 이들의 전화를 불법 도청하거나 미행하는 등의 극단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는 주장이 장기간에 걸쳐 여러 사람으로부터 제기됐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996년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이천전기(주)에서 해고된 후 2003년 삼성그룹 계열사 하도급 노동자와 해고자 등을 모아 삼성일반노조를 설립했다. 해고 사유는 업무 시간에 '불법 유인물'을 배포하고 '불법 단체'를 구성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김 위원장은 일반노조를 중심으로 해고자 복직 투쟁 등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직원 감시 사건이 2004년 삼성SDI 노동자 위치 추적 사건이다. 김 위원장과 함께 노조 결성을 추진하던 삼성SDI 노동자들이 자신의 휴대전화가 복제돼 위치가 추적된 사실을 확인한 후 이건희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사건이다. 당시 피해자로 추정된 이들이 20명에 달했다.
삼성그룹 최고 수뇌부가 이 같은 불법 행위의 주도자였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은 그룹 내부 고발자였던 김용철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변호사)의 <프레시안> 인터뷰로 확인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2008년 1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당시 구조본 인사팀 팀장이었던 노인식 부사장에게 '위치 추적을 정말 했느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색하게 시인했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그룹 최고 수뇌부의 지시 혹은 승인이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 생각되는 일이 이어져 온 셈이다. (☞관련기사: 김용철 "삼성 노동자 위치 추적, 삼성이 직접 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 사망 사고 역시 이건희 회장 재임 시기 숱한 피해자를 낳은 사건으로 기억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LCD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암 등으로 인한 피해자는 2007년 고 황유미 씨의 사망 이후 총 229명의 제보자와 79명의 사망자로 기록에 남았다. 피해자들은 공동 대응을 위해 반올림을 설립해 삼성전자와 장기간에 걸친 싸움을 이어갔으나 삼성전자는 사태 발발 11년이 지난 2018년 11월에야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의 최종 중재 내용을 받아들였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승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은 필연적으로 삼성그룹의 정경유착을 낳았고, 적잖은 주주에게도 피해를 끼쳤다. 골자는 이 부회장이 1996년 증여받은 돈으로 헐값에 당시 비상장사이던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매입해 이를 바탕으로 그룹 지배력을 키운 후, 거대 그룹을 불법적으로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이후 이재용 부회장을 실질적인 그룹 지배자로 만들기 위해 여러 방법이 동원됐으며, 최종적인 지배구조 확립의 전말이 드러난 건 박근혜 정부 시절 때다.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삼성물산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로 바뀌었다. 삼성바이오 주식 가치를 크게 부풀리는 작업 끝에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최대주주가 돼 삼성전자까지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지금의 구도에 올라섰다. (☞관련기사: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그룹 지배구도 개편 작업 과정에서 숱한 정경유착 의혹과 비리 의혹 등이 제기됐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선언, 노회찬 전 의원이 주도한 '삼성 X파일' 사건 등이 모두 이와 관련된 일이다.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인해 이제 삼성은 실질적인 3세 경영 시대에 들어서게 됐다. 이제 기술력과 판매 능력 등으로는 세계 최고 기업에 올라선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계열사가 진정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그룹, 격변하는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맞춰 성장할 수 있느냐는 과제가 새로운 삼성 앞에 주어졌다.
한국 기업사와 경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거대한 영향을 끼친, 공 못잖게 과도 큰 그의 죽음 이후 경제계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건희 회장을 선각자로 부각하는 메시지를 발표한 반면, 민주당은 그의 성과와 더불어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도 성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대한민국 사회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고 이건희 회장을 평가하고 "그 그림자는 이재용 부회장에게로 이어졌다"고 일침했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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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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