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그의 지시 하나하나에 고단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만, 핵심을 찌르는 이건희 회장의 어록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됐다.
2008년 4월 삼성 본관에서 삼성의 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조선일보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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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이건희 회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 발언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임직원 회의에서 나왔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이대로 가면 2류기업으로 남을 것이라는 위기감과 함께 변화의 절박함을 이렇게 표현하며 ‘신경영’을 선포했다.
이 회장은 늘 경영에서 위기를 사전에 포착하고, 모두를 독려하는데 썼다. 이 회장은 IMF 직전이었던 1997년 1월에도 신년사를 통해 ‘위기’를 이야기했다.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3년뿐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남들은 뛰고 있는데, 우리는 ‘외부환경의 위기’ ‘내부혁신의 위기’ ‘시간의 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삼성은 물론, 나라마저 2류, 3류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순간이다.
이 회장은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늘 ‘변화’를 꼽았다. 1993년 7월 신경영 선언 한달 뒤 이 회장은 일본 오사카 임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자신의 일본 유학 경험을 들려주며 전문가로서의 자세란 어떤 것인지 말한다.
"나는 일본에 있을 때 일본 역사를 알기 위해 45분 비디오 45편짜리를 수십 번 봤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30회 이상, 도요토미 히데요시 10회 이상, 오다 노부나가 5회 이상. 상상해 보라. 시간과 정신을 얼마나 집중해야 하는지 알게 될 거다. 한 손을 묶고 24시간 살아보면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를 극복해 습관이 되면 쾌감을 느끼고 그 때 바뀐다는 걸 알게 된다."
7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하는 이른바 7·4제를 도입한 것도 자신이 변해야 회사가 변하고, 회사가 변해야 나라가 변한다는 신념에 기초한 것이었다. 1993년 6월 7·4제 시행후 사장단 회의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18만명이 출퇴근 시간에 하루 한 시간씩 득을 보면 이것이 결국 국가 전체에도 득이 된다. 지금부터 30년 동안 하루 한 시간만 퇴근 시간 이후에 뭔가를 하면 그 방면에 전문가가 될 것이다. 한 가지를 천 번 하면 박사가 된다."
소니는 이건희 회장에게 언젠가는 넘어야 할 벽이었다. 일본 제조업의 특성에 대해 공부할 것을 주문한 이건희 회장은 무엇보다 디자인 혁신에 관심을 보였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한 말이다.
"왜 소니는 멀리서 봐도 소니고, 파나소닉은 멀리서 봐도 파나소닉인데 삼성 제품은 아직도 이름을 보고 확인해야 하나? 그동안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아직도 답이 없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에서는 디자인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도 개성화로 가야한다."
디자인 경영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수시로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2005년 4월 밀라노에서 열린 디자인 전략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삼성 제품의 디자인 경쟁력은 1.5류다. 제품이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는 시간은 평균 0.6초다. 월드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려면 디자인과 브랜드 등 소프트 경쟁력을 강화해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넘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은 사회적 현상을 회사 경영에 접목시키곤 했다. 내년이면 KTX가 개통된다며 들떴던 2003년말 임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KTX의 개통 지연이 그동안 우리 경제에 얼마만큼의 손실을 가져왔는지 생각해 봤는가? 천안 땅값이 얼마인가? 대전은? 부산은? KTX가 정상적으로 개통됐더라면 물류비 절감은 물론 천안과 부산 지가가 크게 올랐을 거고 지방경제 활성화 효과는 수조원이 됐을 거다. 개통 지연에 따른 기회손실은 이처럼 천문학적이다. 잘된 것만 보려하지 말고 과거에 잘못된 것을 한번 돌이켜 보라."
삼성전자가 삼성나노시티 화성캠퍼스에서 기공식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당시 권오현 사장, 이건희 회장, 최지성 사장, 이재용 부사장, 윤주화 사장, 정칠희 부사장(반도체연구소장), 전영현 부사장(D램 개발실장). /삼성전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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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때는 버리고, 얻을 때는 과감하게 투자하는 접근 방식은 이건희 회장이 전매특허다. 브라운관TV를 포기하고 디지털TV로 빨리 갈아타 1등을 차지해야 한다는 전략도 이와 비슷하다. 2000년 7월 괌에서 TV 사업담당 중역들을 모아놓고 한 말이다.
"아날로그 방식에서는 우리가 출발이 늦어서 졌다. 하지만 이제는 디지털 시대다. 출발선이 같기 때문에 우리도 1등을 할 수 있다."
디지털로의 전환은 새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이건희 회장이 특히 강조한 신수종 사업의 키워드였다. 디지털 경영을 선언을 입안한 2000년 2월 미국 오스틴에서 이건희 회장은 디지털로의 빠른 변신을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처지는 정도가 아니라 망할 수 있다. 1등이 될 수 없다면 문을 닫는다는 각오로 하라. 디지털, 정보통신, TFT-LCD, 반도체 같은 핵심부품에서 1등 품목을 늘려가야 한다."
이건희 회장은 여성인력에 대한 처우개선에도 신경을 썼다. 1970년말 중앙일보 이사 시절, "왜 편집국에 여기자가 없냐"며 혀를 차기도 했다. 1995년 2월 LA 방문 중 이건희 회장은 여직원용 유니폼 디자인 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남녀 구별없이 뽑아놓고 무슨 유니폼인가? 남녀에 차별을 두지 않겠다고 한 건 내가 사회에 약속한 것이다. 일도 남자와 똑같이 주고 승진도 똑같게 하라. 여자라고 배척하면 내가 책임을 묻겠다."
인재경영은 이건희 회장 신경영의 모토였다. 잘하는 사람은 더욱 잘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이건희 회장의 평생 신념이었다. 2002년 6월 사장단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은 핵심 인력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핵심 인력이란 어떤 산업을 글로벌 톱3, 또는 글로벌 톱5에 들어가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S급은 찾는데 2~3년, 데리고 오는데 1~2년이 더 걸린다. 사장이 열 번 이상 찾아가고 가족들 편의를 다 봐줘도 올까말까다. 핵심 인력 확보 방안을 전면 수정하라.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게 안되면 일류기업은 불가능하다."
권오은 기자(ohe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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